미성년 (2019)

2019. 6. 14. 04:57문학과 예술/영화

고등학교 2학년인 윤아와 주리는 각자의 부모인 미희와 대원이 몰래 만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미희는 홀로 윤아를 키우고 있지만 대원은 멀쩡히 결혼해 있는 상태. 학교 옥상에서 말싸움을 하던 중 주리에게 걸려온 엄마의 전화를 윤아가 가로채 불륜 사실을 말해버린다. 자기 엄마가 모르게 조용히 해결할 생각이었던 주리도 당황했지만, 윤아는 무책임한 대원의 태도에 화가 나는 것은 물론 임신한 자기 엄마의 미래도 걱정된다. 두 사람은 눈만 마주쳐도 치받고 싸우는 사이가 됐는데, 한바탕 싸운 후 선생님께 불려가 혼나던 중 윤아에게 어머니가 입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주리의 어머니 영주가 미희를 찾아갔을 때 미희를 뿌리쳐 넘어뜨리면서 하혈 그리고 결국 조산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윤아와 주리는 인큐베이터 속 아이를 함께 지켜보며 조금씩 얘기하는 사이가 된다. 대원은 미희의 병문안에 가려다 주리가 알아보자 줄행랑을 치고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윤아는 학교를 그만 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생을 먹여살리겠다고 주리에게 다짐하고 영주가 낸 병원비를 억지로 모아 돌려주기도 하지만 얼마 안 가 아기가 죽고 만다. 주리의 덕분으로 결국 윤아는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이름도 없이 버려질 신세였던 동생의 골분을 우유와 함께 두 사람이 마시는 장면으로 영화는 맺는다.

 


 

영화에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는 얼마나 됐을까요?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드라마를 돌려 보다가 접이식 핸드폰이 나오는 순간 몰입감이 깨진 일이 얼마 전 있었습니다. 마치 주인공이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화질 낮은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미성년>의 영상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완벽히 2019년 서울의 모습이었습니다. 지하철, 학원, 병원, 두 가족의 집. 그리고 세상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과 옷차림. 교복 위에 걸친 후드티와 코트를 보고 학생들을 알기는 알구나 싶어 피식 웃었습니다. 많이 익숙하게 느낄 분들도 있겠지만은 그런 일상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접하는 일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배경과 소품뿐만이 아닙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윤아는 주리에게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합니다. 주리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윤아를 다그치다가, 그런 식으로 하다간 어떻게 될 거라고 말하려는 순간 말문이 막힙니다. 윤아의 어머니 미희가 생각났다고 느꼈습니다. 열아홉에 윤아를 낳은 뒤 홀로 키우며 빚을 갚았다고 윤아에게 하소연했었지요. 모르긴 해도 비슷한 상황이지 않았을까요. 이때의 주리는 학원에 가는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한부모 가정이 겪는 경제적 그리고 제도적 문제, 그리고 사교육을 받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하다못해 고졸 신분을 얻지 못하면 변변한 일자리도 구하기 어려운 학벌 중심주의라는 사회 문제를 동시에 제기하는 장면입니다.

영화에서 보이는 사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죠. 젠더 권력에 기초한 문제를 가볍게 다루지 않아 페미니즘 시각도 능히 읽힙니다. 주리가 낙태를 검색해보고는 한숨을 푹 쉽니다. 영화가 개봉한 2019년 4월 11일은 정말 공교롭게 헌재가 형법 제269조의 헌법불합치를 선언한 역사적인 날이기도 하네요. 또 영주가 훑는 등기서류는 하나도 빠짐없이 대원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카메라 연출로 인해 훨씬 작아 보이는 방, 그 한가운데에 주저앉은 영주는 숨막히게 답답해 보였습니다. 시선을 돌리면 도박 중독에 빠진 윤아의 아버지도 있습니다. 왜 미희가 혼자서 윤아를 키워야 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따지고 보면 양육비를 강제 징수하고, 선 지급 후 지급의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외국의 사례에 비해 누리고 사는 셈이긴 하네요. 그러고 보면 선생님이 주리에게 말하는 윤아에 대해 '아는 것'도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합니다. 또 윤아 부친의 뒤를 스쳐 지나가는 정선 그리고 태안의 배경도 삭막하죠. 옥상을 향하는 주리는 담배를 피우는 학생 무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이런 수많은 사회 현안이 겹겹이 쌓여 영화 속 하나의 주제가 됩니다. 영화 속 모든 사건의 원인은 대원과 미희의 관계 단 한 가지로 인해 일어났지만 역설적으로 영화의 주제는 불륜과는 전혀 다르지요. 예를 들어 추격전을 그리는 영화라고 하면 1990년에 나오나 2019년에 나오나 본질적으로 내용은 같습니다. 도로가 나아지고 차가 더 좋아지고, 스마트폰으로 위치 추적이 가능해질 수는 있고, 쫓는 이유 중 하나로 암호화폐 투자나 중고 노트북 거래 사기가 새로이 등장할 순 있지만 이런 시대적 요소는 어디까지나 배경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외도가 소재인 영화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미성년>에서 외도의 결과로 일어나는 일들은 별로 다양하지도 않고 대강 짐작 가능합니다. 행복했던 가정의 모습이나 충격적인 사실을 접했을 때의 떨리는 동공과 같은 장면은 대체 어디로 갔냔 말이지요.

페미니즘과 젠더 이슈에 관한 이야기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멀어 보입니다. 김윤석의 독서 피드백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도 새롭고 흔치 않아 놀라운 일 같지요. 대한민국의 변화는 지지부진하고 아직도 문제가 산더미같습니다. <미성년>은 그런 2019년을 날카롭게 그리고 훌륭히 분석해 냈습니다.

 


 

영화를 보던 중 제목 <미성년>이 떠올랐을 때 잠시 의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왜 이런 제목일까요? 성인인 대원 그리고 미희의 가장 미성숙한 행동이 모순적이고, 모든 일을 겪어내는 미성년 윤아와 주리의 성숙한 모습이 모순적이라는 점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조금 더 말해봅니다. 대원의 잘못은 외도에서 시작했지만 그로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의 방종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순간이 왔을 때 그는 도망을 택합니다. 쫓고, 도망치고, 가장 단순하고 웃기는 장면은 길게 이어지면 이어질 수록 보기 힘들 만큼 추해집니다. 미희에 대한 사랑도 완전히 포기하긴 한 건지 미심쩍지, 영주와 이룬 가족도 포기 못 하지. 이런 대원의 태도에서 무책임함, 그리고 미성숙함을 절감하게 됩니다. 미희의 자기중심적인 태도도 병원에서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죠. 그에 비해 윤아와 주리는 아이의 탄생,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모든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버텨낼 수 있는 강인한 모습을 보입니다. 미성숙한 성년, 성숙한 미성년의 이 모순의 긴장이 <미성년>이라는 제목을 구성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전혀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윤아와 주리는 누구보다도 미성년인 존재라고요. 수많은 행동 속에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추리는 법을 배우면서 사람은 아이에서 청소년이 됩니다. 청소년에서 성년이 되는 과정은 뭘까요.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이 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고려하게 되어서일 수도 있고,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기 시작해서일 수도 있고요.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말은 못 하지만 몰래 알고 있는 사실이 있어서,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돈과 시간이 부족해서 혹은 그렇다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성년은 절대로 못 하는, 미성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요. 윤아의 뒷담화를 하는 선생님의 태도를 지적하는 주리, 돈을 긁어모아 병원비를 갚아버리는 윤아, 접시를 들여다보며 아기의 크기를 비교하기도 하고 시험보다도 중요한 결말을 지으러 가는 두 사람. 성년의 눈으로는 당황스러울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자연스러운 장면이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비슷한 이유로 좋아했던 소설 <자기 앞의 생>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나는 부인용 찻집에 들어가서 케이크 두 조각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 에클레르 과자를 실컷 먹고 나서 화장실이 어딘지 물어본 뒤 문 쪽으로 뺑소니를 쳐버렸다. 안녕. 그리고는 프랭탕 백화점에 가서 진열대의 장갑을 슬쩍해서는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그러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110p)

 

영주는 대원이 네 사람을 기만했다고 했습니다. 네 사람은 네 개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에 상처를 받았을 때 각자가 버텨내는 방법, 그 모습을 카메라는 조용히 지켜봅니다. 윤아와 주리는 서로 친해지고 의지합니다. 윤아는 미희의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던 모습, 부모이자 가족인 미희에게 서운했던 모든 일을 이제는 이해하고, 미희를 미워하지 않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동생의 죽음도 주리의 도움을 받아 받아들일 수 있었지요. 좋은 청소년 성장 서사가 녹아 있다고 느꼈어요. 영주는 이 두 사람 앞에서만큼은 의연하고 강한, 멋진 어른의 모습을 내보입니다. 제 탓이 아닌 일 속에서 제 탓인 일로 인해 갈등하는 그 속에서 말이지요. 분명 이 모든 일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이자 당당해야 할 사람이겠지만 미희를 밀친 일의 죄책감을 덜지 못합니다. 퇴원 날의 모습도 스스로에게 미희보다 우월함을 증명하고 그로써 조금은 애매해진 자신의 입장을 확인하려는 마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 마음마저 부질없음을 인정하면서 마지막 매듭이 지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대원은 추하고 하찮은 인물이었습니다. 다른 등장인물이 더욱 빛날 수 있는 이유였구요. 감독이 맡은 역할이 다름아닌 대원이라는 점은 보는 내내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감독이 캐릭터의 역할을 맡을 땐 항상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 혹은 정말 누구여도 상관 없을 단역, 이렇게 두 가지가 대부분이니까요. 자신이 더욱 하찮아질 수록 더 좋은 영화가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그를 충실히 따랐다는 사실이 재미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영화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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