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 (2016)

2021. 9. 22. 08:49문학과 예술/드라마·기타

누구나 이렇게 끝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녹초가 된 마음으로요.

애정을 품고 애틋이 생각하고 관계에 애태우던 그런 요란한 나날도, 구름 같이 미련 없이, 인정 없이 흘러가고. 세상은 사랑을 하라고 만든 곳이 아니기에 온갖 현실이 달라붙어 그 사랑을 끝내 조각내 버릴 때. 지긋지긋하고 괴로운 이 과정에 신물이 나서, 더 이상 사랑을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그런 참담한 마음에 수없이 잠겼습니다. 주인공들이 사랑을 하고, 위태롭게 사랑을 하고, 몇 번이고 쓰러지는 게 가슴이 아팠어요.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첫 다섯 화 동안 선명히 나타나는 안타까운 모순과 부정, 거짓말, 그리고 밝은 미소. 따뜻한 분위기 속에 녹아 있는, 결코 해소되지 못할 강렬한 불협화음. 그것들이 쌓이고 쌓인 그 끝에서 결국 온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아요. 그 장면이 정말, 정말 좋았어요. 가득 부풀어 버린 감정의 풍선이 마침내 여섯 사람을 뒤흔들어 놓으며 터지는, 손꼽히게 괴롭고 슬픈 장면이지만, 그만큼 좋았어요. 슬픈 음악의 클라이막스는 왜, 말러의 망치처럼 비극적이잖아요.

그 슬픈 마무리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어요. 그리고 이미 많이 지친 기분이 들었고요. 그래, 이만하면 됐지. 각자 자신의 위치를 찾아내서, 여태 서로가 없었던 것처럼 다시 혼자의 삶을 살아가는 마무리. 분명히 드라마의 결말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만족스러웠어요. 몇 달이고 시간이 지난 뒤에야 겨우 남은 다섯 화를 볼 기운이 생긴 것도 그때문일 거예요.

시간이 지나다 보니,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이. 그런 것들을 운명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운명은 철궤 같이 삶의 자취를 비틀어요. 무거운 철궤를 제 힘으로 비틀 수는 없는 법, 조금씩 조금씩 한쪽으로 굽으면 철로 위에 놓여 있을 뿐인 삶도 그에 휘말려 굽어 가요. 이 드라마에서는 그 불가항한 힘의 세기가 여실히 느껴져요. 삶의 궤적이 예정한 사건들 앞에서 잠시 시공간을 공유했을 뿐인 우연은 둘도 없이 미약해요. 드라마는 이렇게 말해요. 삶은 괴롭지만 사랑이 있으면 그 괴로움을 잊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내용을 보면, 전혀 반대같기도 해요. 사랑을, 사람을 붙들고 있으려 애쓸 수록 삶은 괴로워졌어요.


스기하라 오토(杉原音)와 소다 렌(曽田練), 두 사람은 지극히 선량한 인물로 그려져요. 그렇지만 가만 보면 주요 등장 인물 중에 특별한 악인은 없었어요. 누군가를 괴롭히려 들지도 않고, 부정한 방법을 취하려 하지도 않아요. 개과천선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런 인물로 우리 앞에 나타났어요. 소다를 괴롭히던 택배 회사의 사장이나 동료 직원들에게서도 나름의 인정을 읽을 수 있는 장면을 넣어 줬어요.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는데도 갈등과 괴로움은 끊이질 않고 가슴을 옥죄는 장면들이 나오지요. 그래서 정말 좋았어요. 언제나 착하고 선량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은가봐요. 아둥바둥 살아가면서, 웃고 또 우는 모습이요.

동이 트면 하늘 가득 퍼지는 따뜻한 붉은 빛깔이 자주 생각났어요. 태양의 따뜻한 면, 나무 인테리어의 집. 어둑한 밤 가로등 전구의 불그스름한 빛. 그런 색채를 자주 썼어요. 필름으로 찍었다면 붉은 분위기로 찍히는 필름을 쓴 게 틀림없다고 말했을 거예요. 새벽노을의 따뜻한 빛에 녹아버리는 기분. 괜시리 눈물이 고이는 풍경만큼이나 아름답고 또 슬픈.

오토와 렌이 끝내 이어지지 않은 채로 매듭을 지었어도 저는 여전히 좋았을 것 같아요. 오토가 마지막 편지에서 그렇게 말했어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제대로 사랑을 했다고, 이 사랑은 나의 소중한 추억이었다고요. 길었던 시간을 뒤로 하고 나아가는 모습, 어쩌면 그걸 보고 싶어서였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이별이 반드시 새드 엔딩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어서요.


직설적인 연출, 정적인 촬영, 따뜻한 색감. 차분하고 잔잔한 작품의 분위기에도 잘 어울렸어요. 다큐멘터리같은 느낌이라 한편으로는 신선했고요. 연기는 조금 아쉬웠어요. 스기하라 오토 역을 맡은 아리무라 카스미(有村架純)의 연기는 정말 좋았고, 소다 렌 역의 코우라 켄고(高良健吾)는 그럭저럭이었어요. 렌이 특히나 일직선적인 감정을 가진 인물이라는 인상을 조금 받았는데, 그게 이 연기의 원인이었을지 결과였을지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히나타 키호코 역의 타카하타 미츠키(高畑充希)는 좋았고, 아리무라 카스미와 굉장히 닮게 나와서, 코미디였으면 둘이 닮았다는 언급을 한 번쯤 했겠다 하고 생각했어요. 모리카와 아오이(森川葵)는 이치무라 코나츠라는 캐릭터를 잘 살린 것 같아서 좋았는데, 사카구치 켄타로(坂口健太郎)가 맡은 나카조 하루타 캐릭터는 원체 자기 감정을 숨기는 인물이라서요. 분명 좋아하는 상대인 코나츠가 상처받을 말을 안부라도 묻듯 가볍게 툭툭 던지는 걸 보면서, 이게 고도로 이입된 연기인지 아니면 그저 대사를 밀어내는 건지 아리송했어요. 그리고 이부키 아사히 역의 니시지마 타카히로(西島隆弘), 이 분은……. 신마다 표정이 비슷한 것도 그렇지만, 따뜻하고 어른스러운 말씨의 대사를 상당히 빠르고 강약 없이 읊으셔서 무게감을 많이 잃은 것 같아요.

1월부터 3월까지 방영한 드라마, 주인공들은 늘상 두꺼운 옷을 입고 손을 비비고 있었어요. 다가오는 겨울에 이 드라마가 종종 생각날 거예요.

 

최고의 에피소드: 제3화, 제5화, 제7화
제3화의 끝부분, 히나타의 독백. "난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오늘 하루를 포기해……. 하지만 분명 아직 마음 속에 포기가 부족했던 거겠지.(私は朝起きるとまず初めに今日一日を諦めます。だけどきっとまだ心の奥のところで諦めが足りなかったんでしょう。)"의 장면, 저도 드라마를 보기 전에 봤어요. 그 뒤에 코나츠가 하루타의 욕조에 뛰어드는 장면도요. 그렇지만 이 유명한 장면의 앞뒤로, 7분 가량의 이야기 전체가 정말 좋았어요. 연출도 많이 공들였고, 장황하지도 않았고, 연기도 좋았어서, 이야기의 중요한 변곡점을 완벽하게 그려냈어요.
제5화의 엔딩이 좋았다고 앞에서도 얘기했지요.
제7화에서는 오토가 양복 입은 렌 앞에서 영수증을 읽었죠. 그 장면도 좋았지만, 뒤에 시즈에와 만나는 장면이 특히 좋았어요. 잘못한 듯이 무릎을 꿇고 있는 렌에게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애썼구나. (よく頑張ったわね。)" 하고 말해줘요. 얼굴을 들지 못하는 렌은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 시즈에가 다시 한 번 "애썼어. (よく頑張った。)" 하고 강하게 말해 줍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해요. "살아있는 자신을 나무라면 안 돼. (生きてる自分を責めちゃ駄目よ。)" 이 대사를 듣고 눈물이 펑펑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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