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오링고로 공부하기, 러시아어와 스웨덴어

2021. 4. 11. 18:25언어

지난 1월 경에 듀오링고를 시작했다. 펜팔이나 유학같은 마땅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우선 슬라브어파 언어를 배워 보고 싶었다. 물론 러시아어를 배워서 폴란드나 체코에서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는 패러다임이 완전히 다른 언어를 배우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모르긴 해도 영어랑은 확실히 다를 테다. 그리고 러시아어에는 명사나 동사의 굴절이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명사마다 문법적 성이 있고, 인칭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하는 동사나 형용사 등이 있다는 뜻이다. 외워서 시험을 쳐야 하는 입장이라면 이게 다 악몽이겠지만, 취미 삼아 공부하는 참엔 덤으로 재미를 주는 요소 같았다.

2018년에 우연한 기회로 본 연극 <일루전>도 계기가 되었다. 연출, 연기, 대사, 그 어떤 것도 아쉬울 게 없었다. 연극이 펼쳐지는 한두 시간 내내 행복한 허상에 젖었다. 그 허상은 극이 끝나고 쏟아지는 박수에 연기처럼 홀연히 흩어지고 말았다. 연극의 일시성은 그 짧은 시간을 얄궂을 만큼 무척 그리워하게 만든다. 그 그리움으로 찾아 나선 것이 <일루전>의 원작, 바로 러시아 극작가 이반 비리파예프(Иван Вырыпаев)의 작품 <Иллюзии>(Illusions)이었다. 그래서 나름 당찬 목표를 세웠다. <Иллюзии> 원어로 다 읽기!

2016년에 러시아에 간 경험도 한 몫 했다. 러시아, 특히 카잔 한적한 곳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렀다. 대표팀 가이드 분의 안내 덕에, 도시를 구경하러, 또 음식을 사러 나가곤 했다. 그곳에서 받은 인상을 요약하면 '도무지 영어만으로는 버틸 수 없을 곳'이었다. 그렇지만 키릴 문자는 당시 열심히 익혔고, 오 년이 지난 지금도 신기할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스 문자랑 비슷한 글자(П, Г, Ф)가 있다는 점이 재밌고 좋았다. 라틴 알파벳과 닮아 헷갈리기 쉬운 글자는 대부분 기억하고 있어서, 듀오링고 학습 초반에 큰 도움이 됐다.

듀오링고의 영어→러시아어 코스에는 총 다섯 개의 체크포인트, 79개의 레슨이 있다. 그중 두 번째 체크포인트에 해당하는 스물세 개의 레슨을 통과했다. 여기까지 다루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어휘: 인칭대명사, 사람, 음식, 동물, 일부 장소; 극히 일부의 형용사와 동사
  • 문법: 명사의 복수형, 문법적 성에 따른 형용사/현재 시제 동사의 변화, nominative/genitive/accusative/prepositional case

구성이 좋다. 선물 보따리를 조심히 끄르듯이 새로운 문법이 천천히 추가된다. 코스 초기에 말할 수 있던 표현과 지금 할 수 있는 표현의 폭은 천지차이이다. 또 반복 학습을 자연스레 유도하기 때문에 동사의 활용도 금세 익혔다. 아직 perfective/imperfective의 차이, 과거형, dative/instrumental case, gen/acc/prep/dat/instr의 복수형 등 익힐 게 많다.


스웨덴어를 배울 땐 훨씬 사소한 계기가 있었다. 스웨덴에 가본 적도 없고, 스웨덴 출신의 사람과 얘기해 본 적도 (아마도) 없다. 북유럽 권에서 배운다면 오히려 핀란드에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유튜브에서 본 영상이 있었다. 핀란드 지휘자 유카-페카 사라스테가 시벨리우스 5번에 대해 얘기하는 영상인데, 중간에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이 곡의 1915년판을 연주하는 장면이 잠깐 나온다. (링크: KCh-2OK_s0s, 18분 35초) 3악장 끝에서 선명한 증8도(=감9도음)의 불협을 연주해야 하는데, 평생 화음에 익숙해진 연주자들이 순간 당황했다며 웃는 사라스테의 인터뷰 뒤에 그가 오케스트라를 멈춰세우고 무언가 말하는 영상이 나온다. 이때 어느 언어로 말하는지가 궁금했는데, 이게 스웨덴어였다고 한다. 스웨덴어에 대해 검색해 보니 핀란드에서 제1외국어로 가르치고, 덴마크어나 노르웨이어와 밀접히 연관한다고 했다. 스웨덴어를 공부하면 핀란드를 여행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다.

이쪽도 다섯 개의 체크포인트, 66개의 레슨 중 두 번째 체크포인트까지의 17개의 레슨을 완료했다. 영어와 스웨덴어가 이렇게 가까울 줄 몰랐다. 문법적으로는 관사(a/an/the)의 존재와 사용처, S-V-O 어순, 전치사의 사용, 인칭대명사의 종류와 굴절 형태 등이 닮았다. 어휘도 굉장히 익숙한 게 많았다. juice, april, man 같은 어휘는 철자법마저 동일하고, tomat, januari, syster처럼 거의 같은 단어도 많다. 물론 이런 단어 위주로 교육 과정을 설계해서 편향된 점도 있을 테다. rock (coat), skådespelerska (actress) 같은 단어도 왕왕 있다. 글자 면에선 영어의 알파벳에 ä, ö, å 정도만 알면 되고, sk/sj같은 발음을 제외하면 대체로 '시키는 대로 읽는' 발음이 맞는 듯하다.

스웨덴어는 V2 word order이란 걸 따른다. 문장의 구성 성분 중엔 동사가 대체로 두 번째 위치에 놓이고, 의문문에서는 대체로 첫 번째로 와야 한다는 것이다. 영어도 비슷하다. S-V-O에서 V가 두번째이니까. 하지만 스웨덴어에서는 주어가 첫 번째에 올 필요도 없어 문장 구조가 훨씬 자유롭고,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그래서 더 아름답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 do, have, be 같은 동사의 조동사적 활용이 마음에 안 들었다. 왜 각자 멀쩡한 의미가 있는 동사들이 순수한 문법적 기능으로도 쓰이는 거지? 그런 면에선 do-support를 사용하지 않는 스웨덴어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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