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와 함께하는 2021 교향악축제-대전시립교향악단(4.13)

2021. 5. 5. 14:06문학과 예술/음악

교향악축제 포스터. 2021년 3월 30일 화요일부터 4월 22일 목요일까지 총 스물한 번의 공연이 이루어집니다.

말러 6번을 좋아하게 된 지도 오래 되지는 않았나봐요. 그 뒤로 들은 곡이 브루크너 7번밖에 없네요. 목관은 무려 5관, 호른도 여덟 대나 되는 코끼리만한 규모의 편성에 연주 시간도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곡입니다. 연주하는 분들에겐 버겁기가 이만저만이 아니겠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이런 곡을 현장에서 감상할 기회가 흔치 않아요. 이번 교향악축제의 스물한 차례 공연 중 가장 큰 편성의 곡일 거예요.

교향악축제에 가 본 게 올해가 처음이라서 몰랐는데, 매년 꾸준히 열리고 있으며 역사도 깊은 행사더라구요. 올해 프로그램엔 꼭 듣고 싶은 곡이 많이 올라와서, 고르고 고르느라 애를 먹었어요. 내년에도 좋은 곡이 많이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이런 생각을 하면 벌써 내년이 기다려져요. 웃기게도 말이에요. 내년의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가질 않고, 제가 거기서 어디서 뭘 하고 있을 지, 있기는 할 지도 사실 모르겠지만, 그다지도 불확실한 미래에 일희일비하고 또 있지도 않은 일에 기대를 걸면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대전시립교향악단은 상임지휘자 제임스 저드(James Judd)의 지휘로 두 곡을 연주했습니다. 1부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3번 가장조, K.488입니다. 2부는 말러 교향곡 제6번 가단조였습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3번의 프로그램 노트가 기억나요. "만약 청중을 압도하려고 한다면 이 작품은 최상의 선택이 아닐 것이다. 강한 개성으로 많은 덧칠을 해서도 안 되고 너무 비어있어도 밋밋하다." 저는 21번을 많이 좋아하고 20번은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어요. 다른 피아노 협주곡은 전혀 몰라요. 그래서 프로그램 노트를 꼼꼼히 읽었어요.

곡이 시작하고 보니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마음에 들었어요. 1악장 시작 부분이나, 19마디에서 나오는 바이올린의 음형은 어쩐지 굉장히 익숙했어요. 실내악의 정갈함과 우아함을 지닌 곡이였어요. 피아노의 음색이 굉장히 부드럽고 둥글게 들렸는데, 무대와는 가깝지만 정면이 아닌 왼쪽에서 들어서 그랬을까요? 그런데 오케스트라의 음색이 그와 굉장히 잘 어울렸어요. 깜짝 놀랐어요! 이 시대의 곡은 플룻-클라리넷-바순의 앙상블 역할이 크잖아요. 이 셋의 음량 조화가 정말 좋았어요. 오케스트라 전체를 보면 음량은 부드럽고 절제돼 있고, 한 파트가 나서면 다른 파트가 자연스레 물러서는 게 마치 무용 같아요.

피아노 협주곡은 실은 어긋나게 들리는 일이 잦아요. 타악기의 어택을 가진 피아노는 독주자 단 한 명이 자유로이 연주하지만, 오케스트라에는 수많은 연주자가 있죠. 특히 후기 낭만주의의 피아노 협주곡에선 피아노의 강타와 오케스트라가 폭발이 함께하는 부분이 여러 번 나오는데, 이런 결정적인 장면에서 엇갈리면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반대로 오케스트라와 협연자가 완벽하게 호응하면 기쁘기가 그지없어요. 대전시향과 문지영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후자에 가까웠어요.


첼로와 베이스의 음색이 1부 내내 우아하고 부드러웠습니다. 활과 현이 일 초에 기백 차례나 마주 긁히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할 만큼요. 그래서 2부가 시작하기 직전엔 주제 넘은 걱정도 들었습니다. 말러의 교향곡 제6번의 막을 여는 첼로와 베이스의 A 음은 거칠고 단호하거든요. 그렇지만 그런 걱정이 말도 안 되는 기우였음을 첫 박자에 즉시 깨달았습니다.

1악장에서 받은 느낌은 결국 2부 내내 이어졌습니다. 첫 튜티는 좋았지만 리허설 넘버 3에선 확실히 호른의 소리가 현악을 집어삼키고 있었어요. 넘버 7에선 사실 목관은 피아니시시모(ppp)이고 현악의 피치카토가 피아노(p)라서, 피치카토가 명확히 들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2주제가 등장하는 넘버 8은 포르티시모(ff)로 기보된 파트도 많지만 더 큰 그림에선 커다란 크레셴도 프레이즈의 시작이라서, 불안정한 느낌을 주는 비올라와 바순의 16분음표, 그리고 호른의 크레셴도-데크레셴도를 이용해 아슬아슬하게 넘실거리는 분위기를 그려내야 하구요. 원체 다이나믹을 대담하고 과감하게 사용하는 곡이기에 모든 파트가 최선을 다한다고 결과가 최선이 되진 않아요. 코끼리의 네 발 모두 고르게 무게가 실려야 해요.

그렇지만 콘서트홀에 쏟아지는 음량 속에서 그런 균형을 찾긴 쉽지 않았어요. 퍼스트 바이올린이 멜로디를 책임지도록 가만 두는 법이 잘 없었어요. 오케스트라 튜티에선 늘 호른이 가장 크고 먹먹하게 울렸구요. 파트 간에도 조금씩 엇나가는 모습이 나왔어요. 154-157마디엔 실로폰의 A음이 거의 한 박자 일찍 나와서, 나중에 악보를 한 번 확인해 보기도 했어요. 이미 전반적인 어긋남이 눈에 띄던 상황이라 누구의 잘못인지 찾기도 어려웠어요. 넘버 24(234마디)는 참 조용하고 아름다운 패시지인데, 차분하게 나오면 좋았을 첼레스타가 상당히 성급하게 나오고 음량도 작았어요.

2악장은 느린 악장이었습니다. 이게 옳다고도 하더라구요. 음악사 분석은 차치하고, 바이올린과 하프가 주선율을 연주할 땐 음량이 살짝 부족한듯 싶었습니다.

공연이 있은 후 꽤 돼서 자세한 감상이 떠오르지 않지만, 음량의 균형이 정말 아쉬운 공연이었습니다. 고난도, 대규모의 곡을 무사히 연주해낸 것에 의의를 두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