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노코 테이코쿠 (きのこ帝国) - 渦になる (2012)

2021. 3. 3. 02:43문학과 예술/음악

2007년 결성. 2012년 5월 미니 앨범 『渦になる』(우즈니 나루: 소용돌이가 되다)로 인디 데뷔. 2019년 이래 활동 휴지(休止) 중. 앨범 제목은 "우즈니 나루"라고 읽으며 '소용돌이가 되다'라는 뜻입니다.

푸른 동심원 모양의 소용돌이만 그려진 앨범 커버

 

온갖 악기가 울리는 마구잡이 소음 한복판을 심벌이 멋지게 갈라놓습니다. 첫 곡인 WHIRLPOOL은 거대한 파도처럼 쏟아지는 곡입니다. 높은 음역에서 쉴 새 없이 연주하는 선명한 기타 소리, 촉촉하다는 말로 다 담지 못할 만큼 풍부한 울림을 지닌 드럼. 배킹이 된 보컬은 "올려다 본 푸른 하늘이 너무도 푸르러"(仰いだ青い空が青すぎて, 아오이다 아오이 소라가 아오스기테)라는 가사를 한없이 되뇌고 있습니다. 가사를 떼어놓고 보아도 여전히 한여름이 떠오르는 곡이지만, 천천한 박자 덕인지 한낮의 정열과 해질녘의 나른한 여유가 함께 느껴져요. D(I)-A(V)에 뒤이어 C(VII♭)가 나올 때의 느낌이 정말 좋아요.

두 번째 곡 退屈しのぎ (타이쿠츠 시노기; 심심풀이)는 두 번째 데모 앨범 夜が明けたら(요루가 아케타라, 날이 새면)에 수록되었던 곡이라고 합니다. (이 데모 앨범은 유튜브 rgUmjgXEltA로 올라 와 있습니다.) 베이스와 드럼 위에 나지막이 깔리는 보컬도 좋고, 배킹도 너무 예뻐요. 중후반의 간주를 풀어나가는 방법도 정말 좋았어요. "당돌하게 시작하는 네 옛날 이야기" (唐突に始まるお前の昔話; 도토츠니 하지마루 오마에노 무카시바나시) 가사의 꾹꾹 누르는 듯한 보컬도요. 8분 짜리의 긴 곡이지만 지루하지 않아요.

세 번째 곡 スクールフィクショノ (스쿨 픽션)은 전형적인 밴드 사운드의 곡이에요. 4분의2 박자의 후렴구도 시원하지만 그 앞에 오는 브릿지 부분 ("부자유함을 자랑할 수 있는가": 不自由であることを誇れるだろうか, 부지유데 아루 코토오 호코레루 다로우카)의 보컬이 좋아요. 성대를 많이 붙이는 소리라고 할까요? 사토 치아키의 이 음색을 정말 좋아해요. 하이틴 느낌의 가사와도 잘 어울려요.

그 다음 곡 Girl meets NUMBER GIRL은 앞 곡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사운드도, 하이틴 느낌도요. 저는 이 곡이 더 좋더라구요. "머리카락이 바람을 휘감아"(髪が風をまとって, 카미가 카제오 마톳테) 하는 브릿지 부분이 특히 좋아요. 아주 높은 곳에서 바람을 맞으며 저 아래를 내려다 볼 때의 기분이 들고, 숨을 흡 하고 들이마셨다가 뒤이은 후렴구에서 팡 터지는 게 좋아요.

다섯 번째 트랙은 The SEA입니다. 넬에게서 들어본 곡 같았어요. Let's Take A Walk 앨범에 실린 "미련에게"가 같은 C# major 곡이고 차분한 분위기도 비슷하네요. 보컬은 현악기처럼 수많은 음색을 보여주고, 해변가 홀로 뜻없이 몸을 휘적이는 사람같이 자유로워요. 곡 전체가 커다란 크레셴도를 타고 퍼져 나가요. "비야, 비야/방을 가득 채워 바다 되어라/푸르른, 또 푸르른 바다 되어라"(雨 雨/部屋満たし 海となれ/青い青い海となれ, 아메 아메/헤야 미타시 우미토 나레/아오이 아오이 우미토 나레) 하고 끝나는 가사는 실은 우울한 내용이지만, 혼자서 비관에 한없이 빠져들기보다는 그런 감정을 진솔하게 그리고 미화해 표현하고 있어요.

다음 곡인 夜が明けたら(요루가 아케타라, 날이 새면)는 앞서 말한 두 번째 데모 앨범의 타이틀 곡이었다고 합니다. 앞 곡에서 가라앉은 분위기가 묘하게 들뜹니다. 조성이 C#에서 E♭으로 한 음 올라간 탓도 있겠죠? 풍부하고 촉촉하게 퍼지는 울림과 가로등처럼 깜빡이는 기타 소리 덕에 정말 밤길을 홀로 걷는 것 같아요. 가사는 하이틴 스러운 날것의 감정을 굳이 미화하거나 감추려 들지 않아요. '복수'에 한때 굉장히 열이 올랐던 모양이지만, 그 의욕도 "기름이 다 떨어"지고 말았어요. "지금껏 상처입힌 만큼/언젠가 누군갈/도와줄 수 있을 리가 없겠지"(今まで傷つけた分だけ/いつかの誰かを/救えるわけがないだろう, 이마마데 키즈츠케타 분다케/이츠카노 다레카오/스쿠에루 와케가 나이다로) 싶다면, 대체 복수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렇게 마음을 되짚어 보고 생각을 들이고 나니, "떠올려 봐도 어쩔 수가 없는 일"에 얽매이지 말고 "날이 새 오면" 집에 가자고 마음을 먹습니다. 그렇지만 한 차례 더 복잡한 마음이 후렴구로 지나가요. 퍼즐 조각을, 혹은 날카로운 칼을 이리저리 맞대어 봅니다. "복수에서 시작해/그 끝은 대체 무얼까?"(復讐から始まって/終わりはいったい何だろう, 후쿠슈카라 하지맛테 오와리와 잇타이 난다로) 억울하지만,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뒤이어는 폭발하는 기타 소리에 울먹이는 듯한 보컬이 외칩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밤이 지나, 날이 새면/용서할 수 있을 것도 같은 기분이 들어/살아 가고 싶다고, 눈물이 나온 것이었습니다"(でも でも부터 涙が出たのです까지). 하이틴의 느낌이 가장 짙고 그러면서도 솔직해서 참 좋아하는 곡이에요. 같은 주제를 완전히 반대로 접근하는 곡으로 『eureka』 앨범의 春と修羅 (하루토 슈라, 봄과 아수라)가 있어서 이 곡을 들으면 잠깐 떠오르기도 해요.

마지막 곡 足首 (아시쿠비, 발목) 앞에는 잠깐의 간주가 있습니다. 이 간주는 뒤이어 곡의 클라이막스에서도 멋지게 등장하죠. 곡 전체가 D(I)-G(IV)로 이루어진 덕에 무언가 여행을 떠나는, 들뜨는 기분입니다.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도 너무 잘 어울리죠. 곡의 가사는 영화의 콜라주와 같이 불연속적이고 삽화적이며 동화적에요. 그러니까 잘 이해할 수 없단 말이죠. 달아나고 마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쫓는 이미지를 "노래를 이어나가자"는 다짐으로 마무리했기에, 막연한 꿈을 좇는 사람의 희망을 나타내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요.

 

WHIRLPOOL, 退屈しのぎ, Girl meets NUMBER GIRL, The SEA, 夜が明けたら. 이렇게 다섯 곡을 가장 좋아해요. 차분하고 거대하게 시작해 앨범 가운데에 임팩트가 모였다가 다시 느긋하게, 그렇지만 의욕 넘치게 끝나는 느낌이라 앨범 전체의 구성도 좋아해요. 이 이후에 발매한 게 인디 1집인 『eureka』인가봐요. 정말 좋아하는 앨범인 인디 2집과 정규 2집에 대해서도 쓰고 싶은데 그건 또 언제가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