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 맨 Iron Man (2008)

2019. 5. 12. 01:56문학과 예술/영화

전세계 군수산업의 독보적 1위에 군림하는 기업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후계자 토니 스타크가 아프가니스탄의 군사 조직에게 납치된다. 이들은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신제품인 제리코 미사일을 똑같이 만들어 주면 풀어주겠다고 말하며 스타크는 이들에게 공학 설비와 재료를 제공받는다. 그러나 그가 만드는 것은 각종 화기와 추진기가 달린 강철 갑옷이었다.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하고 구조된 스타크는 앞으로 무기 개발 산업에서 손을 뗄 것을 선언한다. 한편 스타크의 납치, 그리고 살해까지 계획했던 이가 있었으니, 스타크의 아버지의 친구이자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부사장인 오베디아 스탠이었다. 그는 스타크가 탈출에 사용한 강철 갑옷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새로운 갑옷을 만들어 군수업계를 완전히 집어삼키고자 한다. 도심 한복판에서 무력을 다툰 끝에 오베디아가 사망하며 마무리되고, 그 과정을 지켜본 시민들도 '아이언 맨'을 똑똑히 기억하게 되었다.

 


 

한동안 <어벤저스: 엔드게임> 얘기를 안 하는 곳이 없었습니다.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개봉이 저는 정말 엊그제같은데 벌써 만으로 1년이 넘었다네요. 수 년에 걸친 MCU 영화가 이제 커다란 끝을 맺는다고 하니 괜한 아쉬움과 호기심도 더 생깁니다. 한편으로 CGV의 어느 극장에서 <엔드게임> 상영관 확보를 위해 이미 예매가 되어 있던 <미성년> 상영 회차를 강제 취소했다는 황당한 소식도 있었습니다.
저는 좋은 계기로 그 1년 동안 독립영화관, 예술영화, 이렇게 불리는 곳과 작품을 열심히 보러 다녔어요. 영화를 보는 동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가 많이 좋아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동시에 차례차례 개봉 소식이 들려오는 '히어로 영화'가 한없이 가볍게만 느껴지더라구요. <엔드게임> 개봉을 맞아 넷플릭스와 왓챠에서 동시에 <어벤저스> 시리즈의 프로모션을 올리기에, 이런 가볍다는 선입견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한 번 제대로 보고 나서 평가해 보자는, 약간은 팔짱 낀 시선으로 MCU 영화들의 감상을 시작했어요.

 

수많은 여성의 사랑을 받고,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본인은 그에 별 개의치 않아 하는 토니의 캐릭터는 너무나 넉넉하게 클리셰입니다. 이런 남성 캐릭터에게 선망을 품는 사람들도 참 유감이지만 있더라구요. 어린애처럼 고집이 강하고 모든 걸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고, 주변 사람들이 그걸 받아주기 때문에 결국 늘 관철하고 말아요. 천재적인 수학·과학·공학 실력도 있지요. 그의 행동과 대사에 익숙해지고 나면 예측하기 어렵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니의 수많은 배려심 없는 행동들도 처음 봤을 땐 재미있었겠지만요, 재치란 느낌은 사라지고 무례함만 다가오게 되기가 금방이었습니다. 반대로 적잖은 '능청'이 필요한 토니의 연기를 완벽히 보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인상깊었습니다. 그런 토니의 행동을 로즈와 포츠, 그리고 스탠은 받아내며 살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 초중반까지는요.

스탠의 범행 동기는 회사의 수익, 권력욕, 혹은 둘 다인 것 같습니다. 토니의 든든한 파트너이자 의지할 인물처럼 보이던 스탠의 모습은 자신의 수트를 입은 후 도로 위를 날뛰며 폭력을 휘두르는 후반 모습과 극렬하게 대비합니다. 그 대비가 솔직히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스탠은 그 덕분에 의심의 여지 없이 메인 빌런의 자리에 올랐지만, 토니를 미워하고 권력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인물로 전락한 과정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관객은 이제 명백한 악인이 생겼으니 그를 미워하고 반대로 토니를 응원하면 됩니다. 이보다 조금 더 복잡했다면, 조금 더 생각할 여지가 있었다면 낫지 않았을까요?
Ten Rings는 아프간의 테러 집단의 이미지를 그대로 구현한 것 같지 않나요? 이들도 참 이유 없이 폭력을 좇는 집단입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보는 사람이 가진 스테레오타입에서 꺼내올 수밖에 없구요.

주인공이 고난을 겪고, 악의 역할인 인물 혹은 세력이 등장하고, 가까운 사람의 위험이나 죽음으로 인해 주인공이 각성하고, 빌런을 극복하면서 정의롭고 영웅적인 '히어로'가 되는 스토리는 장르의 문법인가봐요. 그렇다면 아마 비단 <아이언 맨>뿐만이 아니라 이전에 있었던 모든 영화와 만화, 소설 등의 작품에서 차근차근 발전시켜 온 문법일 거예요. 그래서 이런 구조를 <아이언 맨>의 평가 요소로 놓을 수는 없겠어요. 무엇보다 이 <아이언 맨>은 MCU의 첫 영화이자 캐릭터를 명확히 그리고 인상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인 작품이었을 테니까요. 콜슨 요원이 얼굴도장만이라도 찍으려는 듯이 자꾸 등장하는 것도 그런 면에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토니와 포츠 사이의 감정 변화는 드러나게 설명되지는 않았지만 연심이 그리기 쉬운 주제도 아니니 그러려니 싶습니다. 반면에 토니의 태도 변화, 즉 탈출 이후에 완전히 반전 태도를 가지게 된 점은 생각해 볼 만해요. 자신의 생각에 대해선 놀랍도록 과묵한 캐릭터니 추측할 수밖에 없겠어요. 토니는 무엇을 깨달은 걸까요? 무기가 무고한 민간인을 제압 및 사살하는 데에 쓰인다는 것, 무기의 발전은 분쟁 지역의 혼란을 가중하고 다층화할 뿐이라는 것 등도 떠오르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무기는 사람을 해치고 아프게 하는 가장 순수하게 악의적인 도구잖아요? 그 악의를 몸소 느꼈기 때문에 토니가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방금까지 같이 사진을 찍던 군인이 죽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도했고, 본인도 끔찍하게 공격적인 무기에 맞았구요. 납치와 개발 명령 같은 건 어차피 따를 생각이 없었으니 크게 중요하지 않고요. 그들이 쌓아두고 있던 무기 역시, 판매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한참 뒤였으니 그저 나포했다고 생각했을 테고요. 민간인 피해에 대한 뉴스를 보고 벌떡 일어나 도우러 나간 것도 인센 박사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라고 봐요. 선을 행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순수한 악은 행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게 아니었을까요?

저는 이렇게 상상했구요, 영화속 묘사는 전혀 다릅니다. 무기 개발 중지 발표 당시 토니의 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I saw young Americans killed by the very weapons I created to defend them and protect them. And I saw that I had become a part of the system that is comfortable with zero accountability. (...) I came to realise that I have more to offer this world than just making things that blow up."
"우리 미국인을 지키기 위해 만든 무기로 인해 바로 그 젊은 미국인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몸두고 있는 이 시스템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목격했구요. (...) 제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게 펑펑 터지는 것들을 만들기보다 더 많이 있을 거란 걸 깨달았습니다." 로 의역합니다.
Americans, 미국인이라는 언급은 아버지인 하워드 스타크의 유명한 애국심을 연상시킵니다. 그 애국심이 국방으로, 국방이 무기 및 방위산업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토니는 한 발 나아가서 그 무기들이 거꾸로 자국의 군인을 향할 때의 책임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무기 개발을 중단하기로 합니다. 토니 옆에 박힌 미사일에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로고가 똑똑히 적혀 있는 장면은 개그 신처럼 정말 순식간이지만 이렇게 보면 의미가 큽니다. 내 이름이 적힌 무기가 우리 군인을 죽인다는 점을 깨닫는 지점이거든요.
저는 그런데 이런 생각이에요. 자국 군인을 죽이는 건 싫지만, 적군은 상관 없던 걸까? 이게 모순적이라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토니가 애국자에 가깝다면 저는 조금 더 인본주의자에 가까운 생각을 해봅니다.

 

하늘을 가르는 아이언 맨 수트는 조금 밋밋했지만, 수트 조립 같이 CG 효과가 화려했던 몇몇 장면은 기억에 남아요. 다 본 후 개봉 연도를 찾아보고 오히려 놀랐어요. 2008년의 기술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네요. <아바타>도 이듬해인 2009년에 개봉했었다고 합니다. 벌써 10년이나 됐다니 기분이 이상하네요. 요즘 나오는 영화에서도 비행하는 물체들은 어쩜 그렇게 어색한지 모르겠어요.

본 기억이 있던 <아이언 맨>은 다시 찾아보니 <아이언 맨 3>였습니다. 토니의 캐릭터가 뻔하게 느껴졌던 건 <어벤저스> 뿐만이 아니라 자체 시리즈에서도 한 작품을 본 후라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처음에 언급했던 '팔짱'을 풀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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