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2021)

2021. 3. 6. 01:01문학과 예술/영화

영화 초반, 새로운 집으로 걸어가는 네 식구.

숲속같은 찻길을 구불구불 돌아 외딴 집에 막 닿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미나리>는 새로운 곳, 아칸소 시골 마을로 이주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새 집 살이를 시작한 첫 날부터 완전히 내 집처럼 느껴지는 마지막 날까지의 시간 같은 거예요. 그 시간 동안 가족이 그리는 궤적은 그들만의 아메리칸 드림이었습니다. 그들도 아니고 사실상 (앤과 데이비드 기준) 아버지인 제이콥의 꿈이었죠.

그가 그리는 이상은 5 에이커로는 한참 부족하기에 적어도 50 에이커는 필요한 꿈입니다. 평수로는 6천 평이 아니라 6만 평은 필요하다는 말이죠. 그래서 아들의 심장병에도 불구하고 병원까지 차로 1시간이나 걸리지만 '미국에서 제일 좋은 흙'이 천지에 깔린 천혜의 6만 평짜리 땅으로 이사를 하게 만듭니다.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새고, 허리만치 오는 입구로 뛰어 올라가야 하는 바퀴 달린 집으로요. 아버지 제이콥은 뭉뚱그렸지만 굉장히 전형적인, 어쩌면 과하게 전형적인 남성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가 시작하기 전부터 자신의 판단이 완벽히 옳다고 믿기 때문에 배우자인 모니카와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터를 잡았구요. 다우징(수맥을 미신적으로 찾는 일)에 쓸 돈을 아끼기 위해 제 몸이 상하도록 우물을 팝니다. 허리케인으로 전기는 끊기고 네 가족이 위험에 처한 상황에도 다 괜찮을 거라고 확신하며, 그 위험이 사그라들자 되려 역정을 내죠. 거봐, 내가 뭐랬어, 하고요. 기약도 없고 확신은 더더욱 없는 미래가 반드시 자기를 구원해 줄 거라고 굳게 믿고, 모니카와 두 아이를 그 불확실의 길로 끌어들인 제이콥.

아들 데이빗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을 보면 캐릭터를 그린 의도가 더 확실히 느껴져요. 그가 보기에 아버지는 인상을 팍 쓴 채 담배를 피우며 '우리 남자들은 어떻게든 쓸모가 있어야 된다'고 일갈하거나, 엄한 얼굴로 벌을 세우고 회초리로 때리려 드는 사람이었습니다. (회초리 장면으로 접어드는 첫 씬은 제이콥의 굳은 얼굴을 낮은 각도에서 화면 한가득 담죠.) 가족의 미래에 관해 모니카와 종종 싸웠고, 그때마다 책임지지 못할 낙관론을 늘어놓았구요. 마침내 판매 경로를 찾아 팔자 좀 펴게 되자, 모니카에게 자신만만하게 묻습니다. 이제 다 잘 된거 아니야? 이 즈음에서 영화가 맺었다면 홍보 멘트는 이렇게 썼겠죠. 태풍과 단수마저 꿋꿋이 버텨내 부농의 꿈을 이룬 이씨 가족. 그런 일직선적인 요소가 큰 줄기로 있구요.

아이들을 보며 미소를 띈 모니카.

<미나리>는 모니카의 역할도 관찰하기는 합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짧은 리뷰를 몇 개 읽었는데, 저는 모니카가 단순히 '도심지가 아니라서', 쇼핑도 못 하고 사람 만나기 어렵다는 납작한 이유 때문에 흙내 나는 새 집을 싫어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실상 둘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고 다가올 위험에 대해 미리 걱정하는 사람은 온 가족을 통틀어 모니카뿐인 듯합니다. 농장 일이 돌아가는 데에도 실은 누구보다도 관심이 있습니다. 트랙터를 보고 "얼마야?" 하고 물었을 때 제이콥이 대답을 않고 "다 투자라고 생각해"라며, 오히려 모니카를 다그치려 드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이콥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일을 저지르고, 그 사실을 모니카는 뻔히 아는데도 어떻게든 숨기고 싶어하며, 숨기기 위한 방법으로 자기가 먼저 역정을 내버리고 만다는 게 한눈에 보이잖아요. 모니카는 그 수작을 다 알겠는데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짓고, 아이들에게 쓸 돈만 남겨달라고 말하죠.

농장 일이 잘 안 될 싹이 보이자 자기가 더 열심히 벌고자 집에서 병아리 감별을 연습합니다. 와서 참견하려 들며 언제나처럼 농장 일이 잘 될거라고 주장하는 제이콥에게 "도와줄 거 아니면 가만히 있"으라고 얘기하는 모니카. 제이콥이 술이라도 달고 살진 않아서 진심으로 다행이에요. 욕조에 앉혀 제이콥의 머리를 감겨 줄 때도 '다 책임지'겠다는 말에 머리를 당기고는 물바가지를 부어버리죠. 운명 공동체인 부부 사이에, 게다가 혼자 다 저질러 버린 마당에 책임이라는 말을요. 모니카의 마음이 어련하겠어요.

전형적인, 헌신적 여성상에 꼭 맞는 인물인들 뭐 어때요? 그의 생각이 얼마나 깊은지, 그가 제이콥 못지 않게 힘든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을 잘 관찰해 그렸다면 그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요. 모니카가 부화장 일이 없는 날 농장 일을 거드는 장면이 단 하나도 나오지 않은 것도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제이콥이 기겁하고 손사래를 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조금 합니다.
(순자에 관한 내용은 나중에 보충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미나리>가 페미니즘의 시각을 가지고 있냐고 묻는다면 아니요, 저는 전혀 아니라고 봐요. '기계적 중립'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가족 내 위계를 보면 제이콥과 모니카는 확실히 불평등하지만 그런 사실은 어물쩡 덮고 넘어갔어요. 첫 한 시간은 빨간 모자를 쓰고 농장을 쏘다니며 데이빗에게 이것저것 말을 건네는 제이콥에 대한 낭만적인 기억으로 가득 차 있고요. 모니카는 어머니 순자가 등장한 후에도 여전히 부차적인 역할만을 맡아, 현실적인 문제로 제이콥과 부딪히는 장면 뿐인 인상이었어요. 어린 데이빗의 곁을 둘러싼 여성들,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누나의 기억은 상당히 단순하게 묘사되지요.

이건 여성에 대한 의도적 무관심도, 아버지의 마초적 개척가 정신에 대한 찬가도 아니에요. 그저 살피지 않았을 뿐이에요. 작품 속 데이빗은 가족의 일을 사회와 연결 지어 비판적으로 사고하기를 요구받는 나이가 아니니까요. 어쩌면 아이작 감독은 '순수한 아이의 눈에 남은 기억 속 모습'을 그대로 그렸을 뿐이고, 거기에 가치관을 들이댄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지도 모르죠. 제이콥의 배짱이 아주 탐탁지 않게 보이는 건 저 혼자일 지도 모르고요. 그렇지만 저는 정말로 영화를 보는 내내 갈증이 나는 듯했습니다. 모니카, 순자, 그리고 앤의 이야기가 더 나왔으면 해서요. '이 세 사람 이야기는 대체 언제쯤 나오는 거야?' 하고 애가 탔습니다. 이 인물들에게 훨씬 더 마음이 가고 이입이 됐지만 도무지 분량이 있어야지 말이에요.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았던 장면도 십 년만의 재회와 포옹이었어요. '바퀴 달린 집이라 재밌고 좋다'라는, 태연한 목소리가 더욱 가슴을 찌른 대사는 윤여정 배우 분의 아이디어였나 보더라구요.

결론적으로 제 인상은 이러해요. 큰 줄기를 이루는 육만 평 대농의 꿈은 감동적인 '아메리칸 드림 컴 트루'의 실화가 아니라 가족의 운명을 건 제이콥의 무리한 시도로 다소 격하돼 느껴졌어요. 그렇다고 모니카의 역할이 두드러지지도 않아요. 순자의 캐릭터 그리고 데이빗과의 관계 발전에 많은 시간을 쓴 건 좋았어요.


식물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이나 다용성도 있지만, 화재로 농작물이 전소했는데 계곡가에 심은 미나리는 얄밉게도 잘 살아 있더라는 일화가 모티브라고 읽었어요. 일년 내내 노력했는데 겨우 남은 게 우습게도 팔 생각도 아니었던 미나리 밭 한 뙈기 뿐이었다는 거죠. 그렇지만 그게 목적이라면 그런 후반부 연출에 조금 더 힘을 줬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러닝타임도 검색해 보면 115분으로 나오니 조금 여유가 있었을 테구요. "미나리는 원더풀, 원더풀이란다" 장면의 평화로움이 있었으니 마냥 아쉽지만은 않아요.

모니카나 순자가 아이를 다루는 장면은 손짓과 눈빛 하나하나에 아이를 아끼는 따스한 색채가 물들어 있어요. 병원이던가? 스쳐 지나가는 장면 중에도 아이의 머리나 등을 토닥여 주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나요.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참 사랑하는 것 같아요. 볼품없는 인상의 폴은 일요일만 되면 거대한 십자가를 끄는 고행을 합니다. 가끔 방언이 터지고, '수제'란 말이 어울릴 조잡한 퇴마술을 수행합니다. 그렇지만 그의 기행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거나 그를 얽는 부정적인 사건을 굳이 만들지 않아요. 그냥 그런 사람이고, 거기에 더해 농장 일을 열심히 도와준 사람일 뿐이죠. 빌리(데이빗이 놀러 간 친구네 아버지입니다)도 조금 문제가 있다는 암시는 약간씩 느껴지지만 굳이 자세히 묘사하지 않아요. 데이빗의 어릴 적을 스쳐 지나간 어느 사람일 뿐이니까요. 교회 장면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레이시즘의 암시가 나오는 곳이죠. 그마저도 별 탈 없이 지나갑니다. 오히려 이 가족이 많이 화를 냈다면, 10년 동안 캘리포니아에 살았다는 과거 설정과 충돌한다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요. 교회, 병원, 농산물 판매처 등 네 가족을 둘러싼 사람들이 악하게 묘사되지 않았던 점도 영화의 따뜻한 분위기에 한 몫을 했어요.

<미나리>를 관통하는 주제는 끊임없는 시련이 아닐까요? 태풍, 아이 돌봄, 단수, 데이빗의 병, 농산물 판매처의 거부, 순자의 병, 뒤따른 농장의 화재. 아무 잘못도 없는 이 가족에게 어떻게 할 방도도 없는 큰 재난이 차례차례 찾아옵니다. 이걸 떠안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하고 진심으로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금전적인 문제도 있었겠지만 저라면 한 가닥 남은 의지마저 꺾일 것 같았거든요. 말만 들으면 환상 같은 이민살이의 진짜 모습이란 이런 거구나, 하고 가감 없이 그 괴로움을 표사하는 듯해 인상적이었어요. 하긴, 행복한 일로 가득한 영화를 볼 바엔 여행 팸플릿을 보겠지요.


데이빗 역할을 맡은 앨런 킴(Alan Kim)은 촬영 당시 여덟 살이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대사가 조금 어색해 보였어요. 억양은 글을 읽는 것처럼 단조롭게 느껴졌고, 내용도 주어와 술어를 잘 갖춘 문어체 문장 같았구요. 앨런 킴 배우는 실제로는 영어와 한국어를 둘 다 편하게 구사하는 바이링구얼인가 봅니다. 그렇지만 이런 '억양이 어색하다'가 바이링구얼 태생에 대한 차별 어린 인식일 것 같기도 해요. 한국계 미국인의 한국어가 한국인의 한국어와 여러 모로 다른 점이 있겠죠. 억양, 발음, 어휘 등에서요. 그렇다고 '틀렸다'고 말하는 건 언어의 역동성을 고려하지 못한 무지하고 무례한 발언입니다. 바이링구얼이 두 언어를 동등하게, 각각 완벽히 구사할 거라는 생각 역시 오해이구요. '글을 읽는 것처럼 단조롭게' 느꼈던 것도 어쩌면 그런 무지의 산물이었을까 생각합니다. 문어체의 대사는 데이빗만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모든 배역에서 잠깐씩 느껴졌는데요, 대본을 받아든 후 어색한 한국어가 많아 한참 고쳤다는 윤여정 배우의 인터뷰가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나요.

<미나리>는 반자전적(半自傳的, semi-autobiographical)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네요. 재작년 2월에는 극장에서 <로마>를 보고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이 반자전적인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이를테면 나이 든 분을 아무나 섭외해 그 분의 일생을 그리더라도 이런 느낌의 작품이 나오게 될까요?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어느 화에서 주인공 박완이 엄마 난희와 그 친구분들의 삶을 책으로 써 보겠다고 취재를 요청합니다. 한 분도 빠짐 없이 약속 자리에 나타난 이모, 삼촌들은 입을 모아서 말해요. 내 삶을 소설로 쓰면 베스트셀러요, 영화로 찍으면 아주 대박이 날 거라고요. 우리 모두 나이가 들면 지금껏 멋들어진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고 느끼게 될까요? 그렇게 보면 조금 부끄러운 기분도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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