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작, 교향곡 제7번, op. 70

2020. 4. 13. 10:51문학과 예술/음악

편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2d1, 2, 2, 2 - 4, 2, 3, 0 - timp. - str.
* 피콜로 더블링은 3악장에만 있습니다.
* 클라리넷은 두 명 모두 A와 B♭가 각각 필요합니다.
* 호른은 1st·2nd는 F 호른을 사용하고, 3rd·4th는 D, F, B basso horn 모두 사용합니다.
* 트럼펫은 D, B♭, F, C를 모두 씁니다.

1악장: Allegro maestoso 빠르고 웅장하게, D minor
2악장: Poco adagio 조금 느리게, F major
3악장: Vivace 활기차게, D minor
4악장: Allegro 빠르게, D minor

이조 악기의 악보는 concert pitch(실음=實音)으로 표기했습니다.

1악장 · 2악장 · 3악장 · 4악장 · 녹음

 

1악장

스산한 분위기 속 비올라와 첼로가 나지막이 노래하며 1악장이 시작합니다.

1악장, 1-8마디, cello

이 멜로디는 제1주제가 됩니다. 이 짧은 줄 안에 D minor와 B♭ major(5마디)가 공존하고 있는 게 1악장 전체의 구성과도 닮아 있어요. 저는 1악장이 이런 구조라고 생각해요.

1주제 D minor 제시 (1-60마디)
2주제 B♭ major 제시 (D(73)-112마디)

뒤집힌 1주제(B♭ minor→major)를 통해 도입한 2주제(B♭ major) 발전 (F(113)-138마디)
뒤집힌 2주제(B minor)를 통해 도입한 1주제(D minor) 발전 (149-204마디)

2주제(D major) 확립 (L(214)-243마디)
1주제(D minor) 재현 (246-286마디)

이런 건 그냥 이따가 살펴 보기로 해요. 아무튼, 무겁고 진지한 느낌의 이 멜로디에 악기들이 하나둘씩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산발적으로 나오는 악기 소리는 서로 엇갈리고 뭉치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다 여기서 하나의 주제로 단단히 모이며 체계가 잡혀요.

1악장, A(25)-27마디, violin, cello

처음에는 여기에서 바이올린만 들렸는데, 듣다 보니 여기 첼로가 정말 매력적이더라구요. 제가 첼로를 좋아하는 것도 있고 해서 특별히 악보에 넣었답니다.

1주제의 진지하고 씩씩한 에너지가 어지간히 표현되고 나면 호른의 솔로가 나옵니다. 조성은 E♭ major이구요. 장조(major)니까 긍정적인 분위기겠죠? 음반을 듣다 보면 이 부분에서 한 번씩 놀라게 돼요. 호른이라는 악기가 낼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듯해요.

1악장 B(42)-45마디, horn

그렇지만 이 분위기는 얼마 안 가 1주제에게 자리를 내어줍니다. 장조를 뒤엎고 다시 나타난 1주제는 한층 더 힘을 더해 자신을 드러냅니다. 목관악기의 유니즌이 울려퍼지는 레터 C에선, 온 세상이 1주제처럼 보입니다.

힘차게 나아가던 음악이 별안간 어디에 부딪힌 듯 멈춰버려요. 호른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고 사라지면 머리를 얻어맞은 듯이 멍한 기분입니다. 그리고는 천천히 2주제가 나타납니다. 다소 조심스럽지만, 이내 활기차고 즐거운 분위기로 이어져요.

1악장, D(73)-76마디, clarinet

갑작스러웠던 1주제의 끝과는 달리 차분한 분위기로 마무리가 됩니다. 이 긍정적인 분위기 때문일까요? 사라졌던 1주제가 B♭ minor로 스멀스멀 고개를 들이밀지만, 단조에서 장조로 바뀌어버리고, 이제 2주제가 더욱 기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1악장, 129-133마디, violin, horn

화려하고 아름다운 부분이라 정말 좋아해요. 2주제는 제 차례가 끝나자 급하게 사라져버리고, 곧이어 상당히 불안하게, 그러니까 단조로 변해 등장합니다.

1악장, 149-156마디, violin, cello, flute

어디로 향하는지 자기도 모르는 채로 따라갑니다. 터널을 통과하듯, 점점 밝아지는 흐름(Em→F→C→G→Adim)이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확 밝아진 순간,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비올라가 연주하는 E 음이 바람처럼 훑고 지나갈 뿐입니다.

이제 클라리넷이 아름답게 연주하는 1주제가 나옵니다. B♭ minor입니다.

1악장, 174-181마디, clarinet, oboe, cello

이 부분은 A 클라리넷을 사용하게 되어 있는데, 조성이 조성인만큼 B♭가 더 편하지 않을까요? 왜 A로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물론 이 직전에서 목관이 큰 비중으로 나오다 보니 muta(악기 변경)할 시점이 애매하긴 할 것 같아요.

클라리넷 노래에 이끌렸는지, 사라졌던 악기, 그와 함께 사라졌던 에너지가 점점 나타나요. 호른의 16분음표, 그리고 바이올린의 트레몰로, 그리고 그 밑에 깔리는 첼로와 베이스의 멜로디! 풍선보다도 불안하게 부풀어 오르는 긴장감은 188마디 즈음부터 행방이 보여요. 아, 알 것 같아. 이거 그거야! 그 멜로디야! 맞아요, 1주제가 폭발합니다. 포르티시시모!

1악장, K(196)-198마디, 여러 악기 모음

여기서의 1주제는 처음과 같은 조성인 D minor로 표현됩니다. (폭발하기 직전까지도 B♭ minor에 머물며 고민하지요.)
그 끝에 갑자기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으로 조용해지는 것도 앞서 레터 C의 1주제와 판박이입니다.

차분해진 분위기 속에 아까보다 적극적인 바이올린의 리드에 따라, 2주제가 D major로 재현됩니다.

1악장, L(214)-217마디, clarinet

형식적 필연성도 있지만, D major 자체가 이런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에 정말 잘 어울리는 조성같아요. B♭로 연주될 땐 묘하게 차가운 느낌이 있고, D는 봄같이 따뜻해요.

1악장 M(237)-241마디, flute, horn, 2nd violin

바이올린이 가장 높이 올라갈 땐 정말 있는 힘껏 피어나는 느낌이 들어요. 위 악보에 나와 있는 건 세컨 바이올린이고, 퍼스트는 정확히 한 옥타브 위거든요.

쉴 새도 없이, 첼로가 1주제를 꺼내듭니다. 1주제의 최종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온 오케스트라가 가진 모든 에너지가 쏟아져 나와요. 여기는 잘라 올릴 부분을 고르기도 힘드네요. 거대한 파도에 몸을 맡기는 기분입니다. 아래 악보 부분을 좋아해요. F major(Ⅲ)로 수렴한 다음에 곧바로 D minor(ⅰ)로 뒤집히는 장면입니다. 팀파니도 박진감 있고, 바이올린이 만드는 아름다운 공간감이 좋아요! 바이올린을 배우면 여기가 해 보고 싶어요.

1악장, N(266)-273마디, trombone, horn, violin

1악장이 보여준 제1주제의 비장함과 웅장함을 여기에 아낌없이 쏟아내고 나면, 인트로와 같은 무거운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며 악장이 끝납니다.

 

모티브를 수없이 반복하고 변용하는, 고전적인 소나타 악장의 느낌이에요. 이런 곡 재밌고 좋아요! 다이나믹 변화도 극적으로 사용해서, 피날레를 크게 듣고 있으면 정말 짜릿해요. 공연장에서 딱 한 번 봤는데 잔뜩 흥분해서 나왔던 기억이 있어요. 목관과 호른, 그리고 현이 쉼없이 멜로디를 하고, 화음과 오케스트레이션을 잘 한 곡이에요.

 

2악장

드보르작의 7, 8, 9번 교향곡의 2악장은 서로 비슷해요. (플레이리스트로 묶어 듣기도 해요.) 이 7번의 2악장은 셋 중 가장 자전적으로 느껴져요. 또, 브람스 교향곡 3번의 2악장과도 닮아 있어요. 느긋한 분위기(각각 Poco adagio와 Andante)에, 클라리넷의 서정적인 노래가 바순 위로 울려퍼지며 시작하구요. 3박자 악장에서 4분의4 악장으로 바뀌는 점도 있네요.

느리고 차분한 분위기이지만 긴장감이 가득해서, 책을 한 권 읽는 기분이 들고 정말 좋아해요.

 

3악장

첼로와 바순의 멜로디로 여는 3박자 스케르초 악장입니다. D minor에 기초한 보헤미아적 멜로디의 주제가 지나가면 93마디에서 조금 더 부드러운 주제가 등장하는데, D major와 C, F major 등을 오가는 느낌입니다. 174마디에서 다시 처음의 주제가 등장하고 결국 마무리됩니다. A-B-A 꼴이네요.

3박자의 특징을 많이 쓰는데, 완전히 메트릭한 정박은 아니에요. 싱코페이션(79-80마디 호른)과 헤미올라(39-42마디 등)를 재미있게 씁니다. 음식으로 따지자면 식감이 뛰어나서 입안이 재미있는 느낌같아요.

 

4악장

D minor로 돌아온, 스산한 서부극같은 분위기의 악장입니다. 2분의2 박자입니다.

레터 D(103마디)에서 A major의 밝은 분위기로 전환이 됩니다.

167마디에서 음악은 끝날 듯하다가, 장난기 넘치는 클라리넷의 멜로디로 아슬아슬하게 이어집니다. 물에 잉크를 퍼뜨리듯 natural minor에 장7도음을 툭 떨어뜨립니다.

369마디 즈음부터 코다로 가는 준비 과정으로, 410마디부터 코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