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U404 (2020) 제3화

2021. 3. 11. 04:41문학과 예술/드라마·기타

일본의 경시청(경찰청에 해당) 산하 기동수사대(機動捜査隊, mobile investigation unit)를 소재로 한 드라마로, 이름도 닮은 아야노 고와 호시노 겐이 주연입니다. 도라마코리아에서 제공하다가, 2021년 3월 초 왓챠에서도 스트리밍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래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3화 中 이부키가 기동수사대 대장 키쿄에게 좋아한다고 말한 뒤 시마가 이부키를 수갑 채워 둔 장면.

경찰에 허위 신고를 하고, 쫓아온 경찰관으로부터 도주하는 과정을 달리기 경주처럼 즐기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 학생들의 정체와 계기를 밝히는 내용이 전반입니다. 후반은 좁혀 오는 경찰의 수사망 속에서 마지막 경주를 벌이는 내용입니다.

경찰에 '낯선 남자가 쫓아 오고 있다'며 신고하는 역할을 맡은 마키 카호리(真木カホリ)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도주하는 역할의 남학생들과 친구 사이라, 매번 '경주'를 시작하는 전화를 거는 학생입니다. 이 학생이 이번엔 허위 신고가 아니라 진짜 위협을 받고, 뛰어다니던 남학생들이 결국 경찰에게 '순순히 자수할 테니 제발 마키를 살려달라'고 말하며 무언가 '성장'하는 듯한 전개입니다. 에피소드의 테마인 '분기점'도 이와 관련이 있는데, 이 내용은 뒤에서 풀어 썼습니다.

마키 카호리가 위협받는 것과 같은 장면을 볼 때마다 매번 찜찜하고 불쾌했는데, 오늘은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는 스턴 건에 맞고, 묶인 채로 납치됩니다. 이 과정의 묘사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범인은 덩치가 큰 남성이 연기하는데, 처음에 하는 말은 고작 "귀엽네" 뿐입니다. 혼자 있는 마키에게 다가와서요. 그 다음으로 마키가 나오는 장면에서 그는 필사적으로 110(112에 해당)에 전화를 하고 있고, 공중전화 부스 밖의 범인은 입꼬리를 씰룩입니다. 범인은 잡히기 전까지 내내 기괴하리만치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마키는 목이 터지게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납치나 성폭력은 실재하는 위협입니다. 여성을 상대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범죄이기도 합니다. 여성은 남성이 잘 하지 않는 걱정을 평생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아니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그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리는 건 잘못은 아니지요. 그래 이런 소재를 가지는 소설, 드라마, 영화도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폭력 미수의 장면을 별다른 기능도, 목적도 없이 전시하는 건 어떤가요? 여성과 소수자를 향한 폭력을 즐거움으로 삼는 일이 결국 포르노그래피의 본질이라고 캐서린 맥키넌이 지적한 바 있어요. 피해자의 고통받는 모습이나 가해자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과하게 묘사하지는 않았나요? 손수레에 얹고 끌고 가는 장면, 케이블타이에 묶인 모습이나 가해자가 겉옷을 벗는 장면 등은 정말 필요했을까요? 이게 만일 어느 게임에서 반칙을 써 승리하는 장면 같은 거라면 저도 이렇게까지 연출에 왈가왈부 안 했을 거예요. 그렇지만 엄연히 실재하고, 일상적일 정도로 빈번하며, 극히 폭력적인 범죄를 상당히 공들여 표현하는 게 과연 이 드라마가 추구했어야 하는 길일까요? 범죄와 수사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가?

가해자는 거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피해자는 '남자가 쫓아 오고 있다'고 신고했습니다. 가해자는 이렇게 불립니다. '추행범'. 호시노 겐이 연기하는 시마 카즈미의 말입니다. 아야노 고가 연기하는 이부키 아이는 곧바로 근처의 건물을 찾아 나섭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어디 건물 안으로 데려갔을 거라는 짐작이죠. 가까스로 멈춰세우기 직전 가해자가 하려던 행동은 피해자를 스턴 건으로 기절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정황을 몇 개 제시하고는 시청자가 직접 가해자의 성폭력 의도를 짐작해 낼 거라고 기대하는 거잖아요. 무슨 인질극으로 몸값을 노리는 게 아니고요. 피해자가 여성이고 가해자가 남성이니까 문제 없이 작동하는 논리라고 생각했겠죠? 누군가에게는 그 논리가 트라우마를 촉발하는 내용일 수도 있는데도요. 또 남성 중심의 이성애 가치관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상하게 느낄 이야기이지만, 이성애가 너무나도 당연한 이 드라마에게는 별 상관 없겠죠. 경시청 형사부 기동수사대 대장인 키쿄 유즈루라는 인물이 애인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열심히 통화하자, 두 남성 주인공은 모두 상대방이 '남자' 애인일 거라고 생각하고 자기들끼리 쑥덕대죠.

"피해자가 여성이고 가해자가 남성이니까"는 사실 재단하기 어려운 문제예요. 이 사실을 지우려 든다면 '여성이 받는 위협을 과소평가하거나, 극소수의 경우를 가져 와 기계적 중립을 취하려 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구요. 반대로 이 사실을 강조하고 당연시한다면 이번처럼 '범죄 묘사 자체에 목적을 둔 것 같다'는 비판, 그리고 '피해자가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을 당한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는 문제에 놓이게 되겠죠. 그렇지만 양쪽 다 신경을 쓰는 게 그렇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 민감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런 비판을 받지 않는 작품도 많아요. 사회를 가져다 쓰는 창작자가 사회에 소홀했다면 그걸로는 충분히 비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정말 진지하게 접근했다면 뒤따르는 좌충우돌의 피해자 검거 시도 역시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그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마와 이부키 사이의 묘한 긴장과 유대를 묘사하는 거야 자주 할 수 있죠. 앞선 두 화를 보면 그게 이 드라마 전체의 테마 같아 보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방금 막 범죄에서 벗어나 정신이 없을 피해자 앞에 그런 연출을 놓고 싶을까요? 가해자는 마지막까지 사악한 표정으로 발버둥치고 나서는 저 멀리서 경찰차에 타는 모습으로 퇴장합니다. 피해자는 눈물을 흘리고 한참이나 비명을 질렀지만, 정작 가해자는 검거되기까지 볼썽사나운 모습이나 벌을 받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구요.

이쯤 하고 마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미수 사건을 드라마가 활용하는 방식도 너무 언짢았어요. 골드버그 장치까지 도입해 이번 화에서 설명하려 한 주제는 화 제목인 '분기점'(分岐点)에도 나타나 있어요. 청소년이 범죄의 길에 빠지는 것은 사회가 아이들을 잘 교육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므로 위태로운 분기점에 서 있는 청소년을 보다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법과 사회의 의무라는 것이죠. 분기점에서 육상부 남학생 네 명을 확실하게 돌려세우는 마지막 소재로, 성폭력 미수 사건은 '사용'됐을 뿐이에요. 그 자체가 작품 줄거리 혹은 마키 카호리라는 인물의 각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반드시 일어나야 했던 일인가요? 아니죠. 그저 남학생들에게 성장의 계기가 될 비극적 사건이 하나 필요했을 뿐이고, 이를 위해 여학생을 등장시켜서는 그를 극한의 공포로 몰아넣은 거예요. 뭐가 불쾌했는지 모르겠던 이유가 있었어요. 이유가 너무 많아서 그런 거였어요.


2020년에 나온 드라마지만 여전히 주연은 남자 주인공 둘, 같은 수사대 동료도 남자만 둘. 수사대 대장은 여성이니 "여성이 이렇게까지 높은 자리에 올라간 걸 보면 성차별은 없다!"고 큰소리 칠 수 있죠. 작품에서도 나오듯 '미모로 얻은 자리가 아닌' 자리를 얻은 여성도 훌륭한 롤 모델이지만, 평범하게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여성 주인공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어 아쉬워요.

요즘 나오는, 보다 '세련된' 드라마는 세상을 바꾸려고 이런 노력을 하는 것 같아요. 작품 속 어느 인물의 입을 빌어, 차별적이거나 폭력적인 발언을, 생백신같이 무디고 약하게 깎아낸 뒤 툭 던집니다. 작품에서 가장 멋진 인물은 그걸 듣고는 곧바로 멋지게 (그리고 길게) 반박하고, 반박당한 사람은 멋쩍게 웃으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멋진 의도고, 실행해 내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이게 정말 의미가 있을까요? 드라마 속 대사는 정확한 숫자와 사실로 가득 차 있고 그걸 달달 외워 현실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설사 외운들 소용이 있을까요? 차별적인 발언에 곧바로 화를 내거나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잖아요. 젠더 권력, 직장 내 위계, 가부장적 위계. 이런 위계는 굉장히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아 있어서, 이름을 붙여야만 가시화할 수 있었어요. 차별을 억압하는 낡은 위계 질서가 이제는 만천하에 드러나도록 스포트라이트를 쨍쨍 비췄으면 하지, 거기서 조금씩 새어나오는 차별의 결과물을 겨우 반박만 이어나가기를 원하지는 않아요. 그것도 자세한 통계와 분석으로만 얻을 수 있는 지식인 데다 결국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주장은 반박도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오히려 한참 먼저 나온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는 주인공 모리야마 미쿠리가 그런 구조적 문제를 대놓고 언급하며 객관적으로 분석해 나갔어요.

MIU404는 아직 3화밖에 보지 않았지만, 정말 좋다 하는 느낌은 확실히 안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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