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벨리우스, 교향곡 제5번, op. 82

2020. 4. 7. 03:16문학과 예술/음악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제5번은 세 악장으로 나뉩니다.

Ⅰ. Tempo molto moderato.
Ⅱ. Andante mosso, quasi allegretto.
Ⅲ. Allegro molto.

악기 편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2, 2, 2(B♭), 2 - 4, 3(B♭), 3, 0 - timp. - str.

각 악장을 공부한 내용을 악보와 함께 풀어 쓴 글입니다.

악보는 IMSLP에 있는 15922번 PDF 파일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악보입니다. concert pitch(연주되는 음, 實音)를 표기했습니다. 원 악보의 slur나 articulation, dynamics 기호들은 필요한 경우 외에는 제거했어요.

1악장 · 2악장 · 3악장 · 앨범 (링크입니다)

 

1악장

호른의 멜로디가 적막을 가르며 tempo molto moderato, 매우 차분한 박자로 막이 오릅니다. 세 대의 호른이 한 음씩 쌓은 화음 위에 놓이는 퍼스트 호른의 노래는 잊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이 선율의 모티브(5도-1도-2도-5도 음을 짚는 상승, 장-단-단-장)는 악장이 끝날 때까지 변용하며 언급됩니다.

1악장 1-4마디, flute, clarinet 및 horn

네 개의 목관악기가 이 모티브를 주고받으며 발전시킵니다. 그러나 오보에와 함께 불안함이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B♭ minor인 듯하지만 조성은 계속 흔들립니다.

1악장 9-12마디, flute 및 oboe

이 불안함은 아래의 소재를 발전시키며 진행해 나갑니다. 장5도를 오르내리는 도약은 4마디에서의 D-E♭-B♭과 닮아 있고, 음 간격은 단-장-단으로 모티브와는 반대지요. 조성도 어느새 G major로 이조(移調)했습니다.

1악장 20-23마디 flute

현악기도 어느새 들어와 있지만, 불명확한 불협화음만 남기며 목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안정함을 거들 뿐입니다.

그러다가 이 혼란이 한순간에 풀려나갑니다. 개운하게 풀려 나가는 음악은 G major의 조성으로 잠깐 종지를 이룬 듯하죠. (아래 악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부분은 현악이 관악보다 16분 음표만큼 빨리, 즉 어긋나게 연주해야 합니다. 여기에 관한 사이먼 래틀 경의 일화가 재밌어요. https://www.digitalconcerthall.com/ko/concert/20350 이 인터뷰 9분 즈음입니다.)

그렇지만 이 마무리는 완전치 못합니다. 음악적으로는 tonic인 E♭가 아니라 G에 놓인 불안정한 결말이지요. 어라, 여기가 아니네? 다시 돌아가야겠어요!

음악은 다시 조를 E♭로 바꾸어, 리허설 레터 A부터의 과정을 되풀이합니다. 조성이 바뀔 때 팀파니를 잘 쓰는 것 같아요. 그 결말은, 위의 레터 D와 꼭 닮은 아래의 레터 I입니다.

1악장 62-65마디, flute, 1st violin (div. 1)

1악장을 소나타 형식으로 해석하기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를 첫 번째 주제의 제시부(exposition)라고 하면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아요. 이후 한참동안 현악 위에 바순이 나지막이 솔로 연주를 하는데, 반음계를 사용해 모호한 조성 속에서 아주 천천히 상승합니다.

교향곡에서 바이올린이 멜로디 하나 하기까지가 이렇게 어려울 수 있을까요? (보통 이렇게 부차적인 역할만 맡기는 파트가 아니거든요.) 드디어 바이올린의 차례입니다. 바이올린은 앞서 나왔던 20마디의 플룻의 모티브를 발전시킵니다.

1악장 92-95마디, 1st violin

 

 

여기도 모호한 조성이 조마조마하게 흘러갑니다. 저 멀리 보이는 빛을 향해 걸어 마침내 터널을 나오는 순간...! 거대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아름답게 따뜻해요. 팀파니가 구를 때마다 가슴이 울려요. 음악적으로는 다시 악장의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아래 부분은 3-6마디의 플룻과 아주 비슷하지요. 대신 여기서는 B major scale로 전개가 됩니다.

1악장 106-109마디, horn, trumpet

지휘자는 보통 지시어 poco a poco meno moderato를 따라, 조금씩 차분함을 덜어가며 이 즈음부터 속도를 냅니다. 첫 주제가 되풀이되며 발산하는 아름다움에 우리가 빠져 있는 동안에 말이지요. 이 속도감을 몰아, 114마디에서는 지시어가 Allegro moderato로 바뀌며 박자도 12/8에서 3/4로 바뀝니다. 그런데 𝅘𝅥.=𝅗𝅥. (점4분음표=점2분음표) 지시기호가 있어, 실제 빠르기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악보를 보기 전까지는 여기에 뭔가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1악장 112-121마디, flute, trumpet

사실 이 교향곡의 초연 당시에는 이 Allegro moderato를 기준으로 앞뒤가 나뉘어 있었고 이 교향곡은 4악장 구성이었습니다. 당시의 악보인 1915년 기준 악보를 연주해 출판한 음반들도 있습니다. 수익성이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 이렇게 연주까지 해주니 정말 고마운 일이에요. 하여튼 처음의 악보에 기초한 연주에서는, 106마디의 화려한 해소가 2악장 초입에 아주 희미한 형태로 구현되어 있고, 1악장의 마무리는 106마디 앞까지 나왔던 몇 가지 요소를 되새김하고는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가 지금 읽는 건 1919년의 최종 판본이래요.

음악은 이제 이 활기찬 주제를 발전시키며 이어집니다. 조성을 E♭ major로 한 번 (또다시 팀파니를 사용해) 바꾸구요. 아래의 멜로디가 잠깐 나타나는데요, 3악장의 호른 모티브와 닮지 않았나요? 트럼펫이 멋지게 한 번 노래하고 들어갑니다.

1악장 218-226마디, trumpet

위의 멜로디의 변형으로 아래의 질문이 제기되며 갑작스레 긴장감이 찾아오고,

1악장 242-249마디, flute

나머지 목관과 호른이 그 긴장을 폭발시킵니다. 저는 이런 부분이 정말 좋아요! 같은 멜로디를 서로 다른 악기들이 연주하는데, 어긋나게 나타나고 섞이다가 한 목소리를 내며 사라지는 거요.

1악장 258-273마디, oboe, clarinet, bassoon 및 horn

현악도 이를 그대로 흡수하는 척 하다가 화음을 오르내리며 박동하기 시작합니다. 점점 해체되고 산산조각난 음들이 산만하게 진행합니다. 아무 의미 없는 음렬 같지만 여기에 다이나믹(dynamics, 셈/여림)을 줘서, 계속해서 부풀어오르는 느낌이 있어요.

1악장 362-370마디, 1st violin (div. 1)

이 약동은 점점 음량을 키워나가며, 목관·금관악기와 신나게 불협하고 대립합니다
마침내 이 둘이 부딪히며 폭발하는 순간, 곡은 드디어 원래의 조성을 되찾고 팡파레가 울립니다.

1악장 487-503마디, horn, trombone, 1st violin

금관은 1악장을 열었던 주제를 재현하고, 현악과 목관은 경쾌하고 빠르게 살을 붙입니다. 아래 악보의 바이올린이 정말 신나 보이지 않나요? 언젠가 저도 바이올린을 배운다면... 그런데 엄청 높이 올라가네요. 세컨 바이올린 파트부터 차근차근 해야겠어요.

1악장 539-563마디, trumpet, violin

 

130마디 즈음부터는 리듬이 빠르고 특징적이며, 3/4박자이고, 조성이 불안정한 대신 작법이 자유롭습니다. 때문에 이 부분을 이 교향곡의 스케르초(scherzo) 및 토카타(toccata) 부분으로 여기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빠른 부분을 어떤 형식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고 봐요. 이 부분이 독립된 파트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106마디의 1주제의 변형에서 시작해 그 종착지도 마찬가지(497마디)니, 이 부분은 1주제의 발전을 돕는 역할에 그칩니다. 또, 악장 전체를 변형된 소나타 형식으로 보는 것도 조금 망설여져요. 주제 간의 대립보단 1주제 혼자의 론도에 가까운 듯하고, 그런데 또 1주제의 발전이 상당해서 소나타 형식의 진행감도 가지고 있구요. 계속해서 회귀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가지기에 rotational form이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다고 해요.

 

2악장

목관을 배경으로, 현악기의 귀여운 피치카토(pizzicato, 현을 손으로 퉁기는 주법)로 시작합니다. 저는 왜 늘 피치카토가 이렇게 귀여울까요? 조성은 mediant(Ⅲ)인 G major입니다.

2악장 5-8마디, viola, cello

악장은 이 리듬과 멜로디를 변주하며 이어집니다. 8분음표로 쪼개 보기도 하구요.

2악장 42-45마디, 1st violin

바이올린이 환상적인 멜로디를 잠깐 들려주기도 합니다. 여기는 정말 공연장에서 듣고 싶어요.

2악장 63-68마디, violin, viola, cello

같은 부분을 뒤에서는 E♭로 이조해서 반복합니다. home key를 벗어나다보니 잠깐 긴장감도 생기지만 오래 가지 않습니다.

2악장, 88-94마디, flute, violin, cello

157마디 즈음부터는 강렬한 피치카토 위로 트럼펫이 고함을 지르고 사라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두 번 잇달아 나오는데요. 사실 흐름 상으로는 조금 이상한 느낌도 듭니다. 직전에는 G minor의 기색만 잠깐 비췄고, 이 직후에도 어차피 조용한 현악기 피치카토로 이어지기 때문에 필요성이 애매한 부분이에요. 음악적 기능보단 표제적인 느낌이 들어요.

끝나기 전에 잠깐 G minor로 테마를 노래해 보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호른과 팀파니 위에 현악기 피치카토와 이따금 목관악기가 섞여 재밌는 음색을 만드는 악장인데, 상당히 조용해서 졸릴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 악장을 목관과 현악의 병치로 해석하기도 하더라구요. (https://www.youtube.com/watch?v=W_7DOGCxqPg)

 

3악장

세컨 바이올린의 힘찬 트레몰로와 함께 시작하는 3악장입니다. 이 질주감을 좋아해요. 여기에 첫째 박에 액센트를 조금 주면서 시작하기도 해요.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크레셴도를 주면, 액센트가 없을 때보다 크레셴도가 훨씬 잘 들려요. 그러다가 12마디같은 '찍고 내려오는' 꼴의 마디는 살짝 데크레셴도, 그 다음 (다시 올라가는) 마디는 살짝 크레셴도, 그 다음 마디는 12마디와 같이 다시 데크레셴도, ... 대부분 이런 식으로 재미를 주는 것 같아요. 끓는 물 같아요. 맹렬히 끓어오르며 거품을 내면 곧 잠깐 주저앉는 듯하더니 다시 끓고, 뚜껑을 슬쩍 들면 다시 부스스 가라앉고.

3악장 1-18마디, viola

(비올라는 그림의 첫 마디처럼 원래 가운데줄이 middle C인 C clef를 쓰는데, 금관에 concert pitch를 사용한 것과 같은 이유로 여기서는 낮은음자리표를 썼습니다. 무슨 이유냐면... 제가 잘 못 읽어요.)

곧이어 팀파니도 나오고, 목관과 금관도 등장해서 이 8분음표의 달리기를 함께 합니다. 어디까지 이리 급히 가려는 걸까요? 1분 가량의 쫓고 쫓기는 달리기 끝에 첼로와 베이스가 무겁게 누르며 도착했음을 알립니다. 저음부를 이래서 사랑하잖아요.

3악장 97-116마디, horn, 1st violin (div. 1 및 2), cello

호른의 이 고요한 정경을 거닐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시간이 멎은 듯이 차분한 음악. 저는 정말 들을 때마다 울컥하고 눈물이 나는 것 같아요. 목관악기와 첼로가 이 정경 위에서 노래합니다. 저는 첼로를 좋아하니까 첼로 악보로 가져왔습니다. (여기도 원래는 tenor clef를 쓰지만... 높은음자리표가 읽기 편하니까요!)

E♭ major에서 C major로 이조하고 호른에 액센트가 더해져 웅장하고 무게감 있는 장관이 펼쳐집니다.

213마디, 음악은 다시 악장의 처음에서 봤던 활기를 되찾아 달려나가요. 한층 더 생기 넘치게 뛰놀던 8분음표들은 Misterioso(신비하게, 불가사의하게)라는 지시어가 붙은 280마디에서 확 잦아듭니다. (현악기는 여기서 소리를 줄이는 장치인 약음기를 사용합니다.) 조성은 G♭ major로 바뀌구요.

아까는 이 달리기가 정점을 찍는 순간 차분하고 웅장한 음악으로 변했는데, 이번엔 달려나가는 대신 갑자기 소리가 확 줄었습니다. 산만하게 무언가를 연주하던 현악기가 조금씩 엉기면서 도-솔-도로 조금씩 맺히는 게 들립니다. 8분음표의 박자감(퍼스트 바이올린의 첫 번째 파트가 멜로디를 하죠), 그리고 8분음표 두 개 단위의 박자감(대부분의 파트가 솔-레-솔-레를 연주합니다)에 이어 한 마디짜리 박자감이 나타나는 거예요.

105마디의 웅장한 호른 등장, 129마디의 우수 어린 목관·첼로 노래와는 정반대로, 조용하고 적막한 현악기의 맥동 위에 앞의 멜로디가 플룻·클라리넷으로 나지막이 깔려요. 뒤이어 바이올린이 그 멜로디를 받아서 아래와 같이 노래합니다.

3악장 407-428마디, 1st violin

이제 맥동하던 박자감(metric)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바이올린은 슬픈 단조로 완전히 돌아섰습니다.

largamente는 넓게, 여유 있게라는 뜻이고, assai는 '매우'입니다. 위의 악보에서
un pochettino largamente(약간 여유 있게)
poco più larg.(약간 더 여유 있게)
allarg.(allargando, 점점 느려지며)
largamente assai.(매우 여유 있게)의 흐름이 보이시나요? 여기서 극단적으로 느려지는 지휘자도 있고, 감동을 느끼기도 바쁘게 급히 나아가는 지휘자도 있습니다.

비극적인 코랄(choral)을 통과하고 나니 더욱 아늑하게 느껴지는, 3악장을 상징하는 정경이 원래의 조성인 E♭ 장조로 제시됩니다. 이제 그마저도 천천히 작별을 고하며 완전히 떠나가고요. 그 끝에는 여섯 개의 음표가 있습니다.

3악장 473-481마디, 모든 악기

음표 사이의 숨막히는 정적에 가슴이 저려요.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마음에 퍼지는 느낌이 신기하게도 매번 다르구요.

 

초판의 3악장은 조금 더 절제되어 있어요. 감정의 폭발은 적지만 흐름은 조금 더 자연스러워요. 조금 더 길구요. 그리고 증1도음같은 불협화음이 강렬하게 등장하고 곧바로 짓이겨지는 게 정말 좋아요! 깜짝 놀랄 만큼 모순적이잖아요. 지금의 3악장과 구성은 대강 비슷한데, E♭에서 C로 넘어갔을 때 귀를 때리는 C#-G#-G 한 번, 그리고 뒤쪽의 비극적인 코다에서 F♭ 한 번. Jukka Pekka Saraste는 이 불협 덕에 이 곡이 교향곡 4번과의 연관을 갖는다고 생각한대요. 그리고 오슬로 필하모닉과 이 초판본을 연주할 땐 연주자들이 깜짝 놀라 당황했대요. 잘못 연주했나 싶을 만도 하죠.(https://www.youtube.com/watch?v=KCh-2OK_s0s)

 

 

 

음반

모조리 모아보니 다 듣기엔 너무 많네요.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간단히 감상을 남겨 볼게요.

 

YouTube 영상

Hugh Wolff, Frankfurt Radio Symphony

https://www.youtube.com/watch?v=EcjvvBbZhn4

다이나믹의 대비를 많이 써서 연주가 재미있어요. 지휘자가 악보에 없는 지시를 더 넣었다는 뜻이에요. 예를 들어, 어느 음을 가리키며 '이 음은 크게 내라고 되어 있지만, 크게 낸 다음 곧바로 작아지세요!' 하는 식으로 지시를 하는 거지요. 극적인 효과도 살고 '본인이 원하는 연출을 한다'는 느낌을 줘요.
그렇지만 항상 장점으로 작용하진 않아요. 일단 악보에 없는 연출은 작곡가의 의도를 벗어나는걸요. 또 그런 극적인 연출은 누구나, 아무데서나 마구 넣을 수 있지만, 과연 지금 이 연주에선 적재적소에 쓴 걸까?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구요.

연출은 그렇다 치고, 1악장에서는 다이나믹 자체가 좋아요. 관악과 현악이 잘 분리되어 들려요! 제 생각에 1악장에선 원래 이런 분리가 좀 필요하거든요. 현악이 어택에 액센트를 주고 바로 빠져서 그런 것 같아요. 첫 번째 종지(G)보다 두 번째(E♭)를 더 강하게 표현한 게 좋았어요. 2악장의 클라리넷 소리가 예쁘구요.

그런데 3악장 끝에서는 금관 박자가 조금 어긋나게 들려요. 금관은 어택과 디케이가 길다 보니 완전히 '이건 엇박 같다'로 들리지는 않구요, 맞는 듯 틀린 듯한데 아무튼 정박(正拍, 제 박)에 날카롭게 뭉치지는 않는 정도로 들려요. 그래서 기껏 잘 살려놓은 표현이 뭉개져 들려 아쉬워요.

 

Esa-Pekka Salonen, Swedish Radio Symphony Orchestra

https://www.youtube.com/watch?v=lW-fEnOozfA

4분 20초(46마디)에서 오보에가 실수를 했는지 놓쳐버렸어요. 에구구... 팀파니 주자에게는 기본적으로 다이나믹을 두 단계 올려서 치라고 한 것 같아요. 팀파니가 곳곳에서 폭발하는데, 홀의 특성 때문에 필요했을 수도 있는데, 녹음된 결과물에서는 많이 돌출되어 들리네요. 금관을 굉장히 부드럽게 깎았어요. 이런 금관도 있거든요! 어택을 대부분 줄여서 금속 질감이 확 가셔요. 이런 음색으로 크고 넓게 펼쳐지는 음량을 연주할 땐 독특하게 묵직한 소리가 나요.

1악장 106마디를 굉장히 천천히 가요. 제가 아는 연주 중에선 가장 천천히 모는 것 같아요. 피날레에서는 조금 엇나가는 느낌이 들지만 표현은 무난해요. 2악장 78마디(19:00)가 poco a poco stretto(조금씩 빨라지게)이긴 한데, 빨라지는 구간의 음들을 너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 같아서 약간 아쉬웠어요. 98마디(20:07)에서 목관의 포르티시모를 뚫고 나오는 현악의 포르티시모 피치카토, 163마디(22:43)의 rinforzando가 아깝지 않을 만큼 강한 피치카토도 그렇고, 3악장 레터 G(28:22)부터 나오는 미묘한 강약 조절도 그렇고, 빠르기나 셈여림 지시어를 굉장히 충실히, 조금은 과장해서 따르는 느낌이에요. 가끔씩은 빠르기에서 부자연스러운 부분도 있긴 하지만, 오히려 몰랐던 셈여림을 발견하게 되기도 했어요.
너무 불만만 쓴 것 같아요... 그치만 악기가 몰릴 때 처리를 잘 하는 건 좋았어요. 그냥 각자가 원하는 포르티시모를 하도록 내버려두면 음들이 그냥 콸콸 쏟아질 뿐이거든요. 음색이 특이한 악기만 살아남구요. 그런데 이 연주는 그런 느낌은 별로 안 나타나서 좋았어요.

3악장에서 C major로 바뀌는 165마디(27:25)에서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면서, 충분히 즐길 시간을 줘요. 영상에서는 뒤에 커튼이 걷히며 멋진 인상주의 유화가 나타나요.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 W. M. Turner)라는 화가의 <Yacht Approaching the Coast>라는 작품이래요.

 

Apple Music 제휴 음반

Paavo Järvi, Orchestre de Paris

Mariss Jansons, Oslo Philharmoni

Leonard Bernstein, Vienna Philharmonic

 

Leif Segerstam, Helsinki Philharmonic Orchestra

2004년 1월 발매, ODE 1035-2, 2013년 디지털 리마스터. 이 분 지휘 음반이 많은데 아마 같은 녹음본을 여러 번 재수록해 발매한 거겠죠? 1악장 끝에서 현악과 금관이 완전히 어긋나버리는 것 같아요. 금관이 살짝씩 늦어요. 그리고 3악장 끝나기 직전에 빨라지는 폭이 꽤 커요. (지시어는 un pochettino stretto., '약간 빨라지며'입니다.) 저는 이 음반을 들을 때마다 끝날 때 깜짝 놀라요. 그게 별로 좋지 않은 느낌으로 남네요.

그렇지만 저 부분 외의 속도와 음량, 음색 표현은 마음에 들어요. 이 뒤에 나올 세기와 빠르기가 이랬으면 좋겠다 하고 기대하고 있으면 정확히 그대로 연주해 주셔요. 그런 표현은 가장 마음에 드는 음반 같아요.

 

Herbert von Karajan, Philharmonia Orchestra

1960년 9월 녹음, 1961년 발매된 음반이라고 합니다. SAX 2392, 디지털 리마스터되어 2014년 재발매. (카라얀의 시벨리우스 5번 녹음이 네 개 이상이래요. 저만큼 이 곡을 좋아했나봐요...! https://www.gramophone.co.uk/other/article/karajan-s-sibelius)

지시어를 충실히 따릅니다. 1악장의 Allegro moderato에서는 도약하듯 빨라지는 바람에 오케스트라를 놓친 듯해서 조금 아쉬웠어요. 대신 이 템포를 악장의 끝까지 유지합니다. 이러면 좋은 점이, 현악과 관악이 부딪히기 직전인 레터 O 즈음에 급하게 속도를 낼 필요가 없어요. 어떤 연주에선 여기 템포를 급조하기도 하는데, 곡이 곧 끝나기 때문에 그러면 '빨라지려는 느낌'을 가진 채로 마무리가 됩니다. 그 느낌이 1악장 마무리의 고유한 활기찬 기분을 조금 가리기도 해요. (빨라지는 중이 아니라, 원래 빠른 거거든! 하는 느낌으로요.) 이 연주는 그런 점에선 좋네요.

3악장의 호른 멜로디(도-솔-도)는 독특하게 해요. 첫 음에 포르잔도(fz)를 세게 줍니다. 강-약-약, 장-단-단의 느낌인데, 후반의 Largamente assai에서는 가운데 음에 악센트를 줍니다(이건 악보에 액센트가 적혀 있어요). 이 Largamente assai는 찾아보기 힘들 만큼 느릿하고 또 깊은 비수에 차 있습니다. 여기서도 차분한 템포를 고수하며 남은 음악을 진행해요.

곡 자체도 감정이 풍부하거니와 오케스트라가 다이나믹(dynamics, 셈/여림)을 완벽하게 살리고 있어서, 느린 템포가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피날레는... 깜짝 놀랐어요!! 굉장히 빠르고 날카롭게 처리해 버려요. 보통은 점진적으로 살짝 빨라진 다음 템포를 그대로 지키며 연주하거든요. (도-솔-도 하는 그 속도로 마음속으로 여섯 박자를 세면 잘 맞아요.) 고민을 열심히 했는데, 왜 그랬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Herbert von Karajan,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베사 시렌의 사이먼 래틀 인터뷰에서, 앞의 필하모니아 녹음은 굉장히 dry했고, 베를린 필과의 녹음은 또 완전히 달랐다는 언급이 있었는데, 이 음반도 애플 뮤직에 있네요. 앨범 제목은 "Sibelius: Symphonies Nos. 4-7, The Swan of Tuonela & Tapiola (2 CDs)"이고, 1965년 녹음·발매된 138 973 SLPM 앨범의 1999년 디지털 리마스터판 457 748-2인 것 같아요. 앞의 필하모니아 녹음보다 이게 더 나중에 녹음됐네요. 둘의 차이를 계속 비교하게 돼요.

시벨리우스가 처음 썼던 1915년 버전의 2악장의 시작이, 지금의 1악장 Allegro moderato 즈음을 희미하게 구현하며 시작한다고 위에 썼는데요. 이 녹음에서의 표현은 마치 둘 다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초판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듯해요. 또 Presto에서 눈에 띄게 빨라지는 점은 특이한데, 트럼펫은 원래 박자로 가려다 허둥지둥하는 느낌이 조금 있어서 아쉬워요.

2악장 문단 끝에 링크했듯이, 목관과 현악이 각자의 멜로디를 가지고 따로 놀지만 하나의 음악 공간을 같이 점유하고 있다는, 묘한 분리감과 긴장감을 지적하는 분도 있어요. (이 앨범에서 말고, 원래 곡이 그렇다는 얘기예요.) 저는 그 대립이 그렇게 심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런 시선에서 본다면 이 녹음의 2악장은 최고예요. 조용한 부분에서 현악기 소리를 완전히 눌러 놓았거든요. 보통은 현악 arco(뜯는 pizz에서 다시 돌아와, 활로 긋기)부터는 목관을 배경으로 현악이 주체가 되는데, 여기서의 관계는 완전히 반대예요. 이 곡에서 들어본 적이 별로 없는 음색이라 신기해요!

3악장은 트레몰로 소리가 이렇게 선명한 녹음은 처음이에요. 이게 바로 오케스트라의 명성에 걸맞는 실력의 차이일까요...? 아무리 좋은 지휘자 밑에서라도 악기 역량은 궁극적인 한계가 되니까요. 그건 그렇고, 필하모니아 음반에서의 호른 표현과 완전히 달라요! 훨씬 감정적이고 테누토(tenuto)인 표현이고, 템포도 조금 더 느긋해요. 뒤에 음악이 더 있고 우리가 그리로 향해야 하는 건 맞지만, 그런 사실은 잠깐 잊어 두고 지금 여기의 감동을 충분히 느끼게 배려해 주는 듯해요. 팀파니 표현도 액센트가 거의 없이 상당히 차분하구요. Largamente assai는 감정적이지만 장엄한 비탄의 박자는 아니에요. 또 비극적인 분위기로 치닫을 때의 표현이 좋아요. 금관은 절제되고 숨어 있는 음색으로 시작해서, 점점 굵어지면서 직접 음악을 이끌고 나가요. 그리고 결국 레터 R에서 폭발! 이 과정에서 아주 조금씩 빨라진 덕에, 끝나기 직전의 un pochettino stretto(467마디, 조금씩 빨라지며)도 훨씬 자연스럽구요. 6개의 느낌표는 여전히 제 취향보다는 좀 빠르지만, 3악장 피날레 전 과정의 설득력은 이 음반이 가장 뛰어난 것 같아요.

 

 

Kurt Sanderling, Berliner Symphoniker

Sir Simon Rattle, Berlin Philharmonic

Sir Colin Davis, London Symphony Orchestra

 

 

IMSLP Commercial 음반

Maurice Abravanel, Utah Symphony Orchestra

Adrian Leaper, Slovak Philharmonic Orchestra

Petri Sakari, Iceland Symphony Orchestra

Pietari Inkinen, New Zealand Symphony Orchestra

Ole Schmidt,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Okko Kamu, Lahti Symphony Orchestra

Osmo Vänskä, Lahti Symphony Orchestra

Neeme Järvi, Gothenburg Symphony Orches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