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2021. 10. 10. 01:04

가을을 나머지 세 계절은 애태워 그려요. 가을은 대체 언제나 올까. 가을은 서늘한 계절, 뜨거웠던 밤의 열기가 식으면 깨닫는 계절. 여름은 매정히도 당신을 버리고 갔군요. 언제 우리가 다정했냐는 듯 기온은 사정없이 떨어지고 낯선 바람이 붑니다. 경칩의 휘파람같은 바람도, 풀벌레 소리만 가득 담은 여름밤 바람도 아닌, 넋놓고 있다간 에일 듯한 날카로운 바람이요. 가을의 차가움은 반대로 따뜻할 이유가 되지요. 두꺼운 옷을 하나둘 꺼낼 이유, 볕이 아늑할 이유. 타인의 온기가 얼마나 달가운지 다시 한 번 배웁니다. 움츠라든 이들은 서로 더욱 가깝습니다. 따뜻할 이유가 있다는 것, 그리하여 가을은 여름보다도 따뜻한 계절이 됩니다.

온도계가 보기엔 그렇지 않겠지요. 가을의 기온은 여름과 겨울 사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함. 생물학에서는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한 적정 온도가 있다고 말합니다. 체지방을 두르고 근육을 떨어 열을 내더라도 감당이 안 될 만큼 추운 기온이 있는가 하면 땀을 비 오듯 쏟고 모세혈관을 가득 열어도 해결이 안 되는 더위가 있는 거지요. 물론 세계 각지의 기온은 이 범위를 자주 벗어나지만, 사람은 그늘을 찾고 바람을 부치고, 불을 피우고 옷을 껴입어서 어떻게든 체감 온도를 이 범위 안으로 가져옵니다. 이 범위에 넓게 걸치는 쾌적한 종일의 기온.

연중의 기온이 물결 모양을 그리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인 태양빛의 양은 꼬박 1년 주기의 완만한 사인 함수로 나타납니다. 태양의 연중 위치, 관찰자의 위도, 태양 궤도와 적도 사이의 각도, 현재 시각, 태양의 고도, 이런 정보들이 삼각함수를 통해 아주 단단히 맞물려 돌아갑니다.

$$\cos \left(\alpha+\phi \right)+\sin \left( \varepsilon \right) \sin \left( \phi_s \right) = 0$$

시계의 톱니바퀴와 같이 맞물려 있다는 비유는 불가합니다. 시각의 근원인 천체의 연주(年周)에 한낱 인간의 발명품인 시계를 빗대는 일이 가당키나 할까요!

추분점은 그런 사인 함수에서 정확히 0인 지점을 맡고 있습니다. 양수도 음수도 아닌 유일한 수. 춘분점도 그런 성질을 가집니다. 그래서 봄과 가을의 초입은 무한히 순환하는 계절의 주기에서도 특별히 "무언가를 시작하는 시기"가 될 수 있나 봐요. 그래서 초기 로마력이 지금의 3월부터 시작했고, 그 흔적을 영어 달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지요. 10월의 이름 "October"는 "여덟 번째"라는 뜻이고, 문어(文魚)의 영어 이름 "octopus"도 "발이 여덟 개 달린"이라는 뜻입니다. 반대로 프랑스 공화력은 추분을 그 첫날로 삼았고, 따라서 한 해의 끝이 여름에 놓였습니다. 가을은 첫째 달. 공화정 선포일이 마침 추분이기도 했지만, 계몽주의가 세상에 내놓은 대답인 프랑스 혁명, 교회의 달력과 결별하고 과학과 이성의 이름으로 새로 써내려가는 시간의 골자가 되기에 참으로 마땅했습니다.

사인 함수는 이렇듯 한 주기에 꼭 두 번 무색무취의 0을 함숫값으로 갖지만 이때는 변화가 가장 극심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미분값이 최소 혹은 최대인 점, 다시 말해 이계도함수의 값이 0인 점. 수학에서는 변곡점이라고 부르지요. 오목과 볼록의 양상이 바뀌는 순간이자 가장 극심한 경사를 타고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때이기도 합니다. 무려 -1이나 되는 도함수 위, 걷잡을 수 없는 내리막길의 활강. 그게 가을의 심리일까요.


그렇지만 막상 가을이 되어도 그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아요. 가을이 찾아오면 그곳에 가을은 없어요. 가을은 텅 빈 공허감, 죽어가는 시간, 빈 자리의 자리. 그것이 가을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즐거운 가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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