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숫자, 재미 없습니다

2021. 5. 30. 02:50알고리즘 문제풀기

PS 분야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말 중에 자연수 두 개가 요사이 부쩍 눈에 띕니다. 옛날의 제게 물어봤다면 1,000,000,007과 1,000,000,009를 들었겠지만, 아쉽게도 이들은 아닙니다. 998,244,353과 1,048,576도 아닙니다. 훨씬 작은 숫자입니다. 69와 420입니다. 네, PS 분야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훨씬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인터넷 밈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콕 집어서 PS 분야를 언급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PS 분야에 몸담은 사람이 많아지기는 했으나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이게 즐거운 농담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되어 간다고 느꼈습니다. 커뮤니티의 분위기는 영향력 강한 소수의 사람들이 좌우하며, 한 번 굳어지고 나면 바꾸기란 불가능합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원리입니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여기에 물들거나 혹은 금세 질려버리고 일찍 발을 빼고 맙니다. 그리고 저는 이 두 수를 가지고 노는 분위기가 앞으로 발을 빼는 사람만 늘릴 것이라 믿고, PS 커뮤니티의 확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 분위기가 굳어지기 전에 바꾸어 보고 싶습니다. 제가 그렇게 믿는 이유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69는 성적 의미로 자주 사용하는 수입니다. 중고등학생의 나이에 칠판에 쓴 69를 보고 낄낄거린다면 필시 이 성적 의미를 연상했을 터예요. 지나가는 사람이나 직장 동료에게 대뜸 "69가 무슨 뜻인지 아세요?"라고 물었을 때 상대방이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면 이 또한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의미는 아니지만 적잖이 알려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만든 문제의 원하는 자리에 원하는 수를 사용하는 것이야 당연히 개인의 선택이자 권리입니다. 개인의 권리를 최대한 존중하는 게 현대 사회의 핵심 가치 중 하나라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사회적으로 존중되는 가치가 또 하나 있습니다. 서로 합의되어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이 아닌 한, 성적 발화는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월요일 출근해 만난 동료에게 "주말에 뭘 했나요?" 하고 안부를 물으면 여행을 간 사람은 여행담을 말하고, 책을 읽은 사람은 책 얘기를 하겠지요. 집에서 쉬었든 종이접기를 했든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보통 삼갈 필요가 없지만, 자기가 보낸 성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을 일말의 가능성도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지요. 반대로 성적인 주제를 다루기로 미리 공지하고 성인 관객만 받는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장에선 발화의 수준이 크게 달라집니다. 모욕적이거나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고서야 검열하려 드는 사람도 없습니다.

일상적이거나 공적인 대화에서 대뜸 성적인 주제를 입밖에 꺼내는 사람은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그런 암묵적 규율의 정당성이나 역사를 논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인류학이나 사회학 공부가 필요하겠습니다. 다만 듣는 입장에선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요. 중요한 건 이거예요. 당신이 그런 발화를 아무데서나 꺼낸다면 사회적인 합의를 깨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성적 발화에 거리낌이 없어지도록 만들고 싶다면, 아마 시민 단체에 참가해 사회적 운동을 벌이는 게 더 낫습니다.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적인 주제를 얘기하는 것. 많은 성폭력이 이러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불쾌함을 느껴도 거부할 수 없는 상대를 앞에 두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 역시 그 대화를 즐기고 있으며 자기가 이미 상대방의 선 안에 들어가 있다고 믿어버리기도 하나 봅니다.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야기하는 끔찍한 착각입니다. 직장이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크고 작은 위계가 있습니다. 제가 어느 대회에 출전해 문제를 받아 읽어 보니, 이런 숫자를 억지로 끌어와 사용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대회가 벌어지는 몇 시간 동안은 출제자가 쓴 문제를 참가자는 좋든 싫든 받아 읽고 풀어야 합니다. 출제자가 참가자에게 일방적인 정보 전달을 하면 참가자는 대회 성적을 위해 수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 문제 본문에 당당하게 성적인 내용을 적어 두겠다는 것은 결국 성폭력과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레나' 사진도 비슷한 비판을 받습니다. 미국 모 대학 연구진이 여성 누드 사진을 싣는 잡지에서 한 여성 모델 사진을 스캔해, 컴퓨터 비전* 관련 예시 이미지로 사용한 것이 1973년의 일이었습니다. 그 후 수십 년동안 이미지 처리 알고리즘 소개에 이 이미지가 빠지는 일이 잘 없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모자를 쓴 얼굴 사진이 무슨 문제가 있나 싶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적 대상화의 심각성의 경중을 논하며 '남자면 괜찮냐'고 항의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불평등한 대상화도 좋은 토론 주제이고 '레나' 사진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그쪽에서도 많지만, 여기서는 짚지 않겠습니다. 근본적으로 학술적 시연을 하는 공적인 자리에 주제와 상관 없는 누드 모델 사진을 게재하는 일 자체가 극히 비전문적이고 무례한 행동입니다. 다수가 참가하는 대회에 69를 사용한 농담을 끼워넣는 일 역시 심히 무례한 일입니다. 남성 일색의 출제진이 그런 일을 벌렸을 때 여성 참가자가 느끼는 불쾌, 남성 일색의 커뮤니티에서 소수의 여성 프로그래머가 겪는 환멸까지도 생각이 닿으면 좋겠습니다.

* 컴퓨터 비전: computer vision, CV; 이미지, 영상 등을 컴퓨터로 처리하는 학술 분야.


420은 대마초(마리화나)와 연관이 있습니다. 대마초는 술과 같은 진정제 효과가 있으며 대한민국을 포함한 수많은 국가에서는 대마초를 마약류로 취급하여 재배나 소지,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 현황은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와 미국을 필두로 일부 국가에서 합법화가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회적 인식도 조금씩 변화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대마초 사용이 비도덕적이거나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지는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주제가 아닙니다. 마약에 대한 얘기는 결코 유쾌하지 않습니다. 대마초를 재배하고 사용하려는 사람과 이들을 적발해 처벌하려는 국가 간의 갈등.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이 단속한 대상 중엔 대마초도 있었습니다. 이 정책으로 말미암아 수감자가 크게 늘어났고 흑인과 히스패닉의 사회적 인식은 물론 그들의 가정 환경과 소득마저 심각하게 악화되었습니다. 빈민층으로 몰린 이들에게 허용된 몇 안 되는 소득처 중엔 범죄도 있었고 악순환이 생겨났습니다. 또한 낮아진 사회적 인식과 검거 실적의 부담으로 무고한 사람도 체포되기 쉬웠는데요, 미국 백인 경찰의 과잉대응 사건들이 21세기인 지금도 잊을만 하면 새롭게 들려 오고 있지요. 유치장에서 나오기 위해 변호사를 쓰는 일, 부당 처우에 대해 민사 소송을 제기하는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환경의 사람들.

대마초가 '불법이어야 하는지'는 생각이 달라도, '불법인 동안 일어난 일'은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에 있다고 딱히 남의 이야기도 아니지요. 유명 연예인이 대마초를 피웠다는 소식에 그 사람 개인에게 실망하는 건 쉽습니다. 약물이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시장은 사회의 가장자리에 놓인 사람들을 데려갈 수밖에 없고, 대한민국의 저변에 그런 잠식적 구조가 자라나는 것이 어쩌면 유명인 한 사람의 범죄보다도 더 우려해야 할 일일 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대마초는 불법화된 마약으로서 커다란 사회 문제의 한 축을 맡습니다. 420이라는 수를 가지고 장난을 치며 즐거워하는 것도 결국 여기에 귀결합니다. 인터넷에서 흔히 쓰이는 농담이 된 이유, 유명 래퍼가 힘들었던 시절을 말할 때 이게 빠지지 않는 이유, 빈민가 흑인이 마약으로 내몰리는 이유. 그런 맥락을 떠올릴 수 있다면 딱히 유쾌한 수로 다가 오지 못합니다.

어떤 숫자들은 굉장히 정치적이고, 사회 문제와 깊게 연관합니다. 64라는 수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를 나타내는 값으로, 십수년째 여성 임금 평균이 남성의 64%에 불과하다는 통계치입니다. 당신이 여성으로 태어났으면, 아무리 똑같이 살며 날고 기어 보아도 남성으로 태어났을 때의 64%의 돈만 받으며 살 것이란 뜻으로 해석 가능합니다. 물론 직종이 다르고, 연차가 다르고, 임직원 여부가 다르고, 정규직 여부가 다르고……*. 통계적 추론을 수행하기 어려울 만큼 간략화된 수치이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지요. 그러니 이제 만일 누가 대화 중에 "그럼 뭐 해, 64%인데."하고 말한다면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정치적 의제에 얼마만큼 관심을 가지는지 짐작이 가겠죠. 그러는 사람이 많다는 게 아닙니다. 숫자 몇 개가 때로는 깊은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는 말입니다.

* 예전에 읽은 글을 링크합니다. 《한국사회학》지의 논문을 풀어 쓴 글입니다. https://sovidence.tistory.com/1000: "경력단절 이전 20대 여성은 차별받지 않는가?"

맥락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숫자의 나열인 것이, 맥락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강제로 사회·정치적 문제를 상기하는 방아쇠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면, 바로 그 문제 때문에 그 수를 쓰는 거라면, 그렇게 방아쇠를 당기는 데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가 오직 오락적일 뿐이라면, 수십, 수백만 명의 인생을 결정해 버린 어떤 문제를 고작 인터넷 밈 혹은 문화적 레퍼런스로 소비하기 위해 상습적으로 끌어온다면, 사회적 사안의 경중이나 가치 판단의 기준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한 화자의 유치한 행동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지 않을까요? 누군가는 "아, 이 사람은 자기와 관련이 없는 주제라면 지구 반대편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든 말든 별 신경을 쓰지 않는구나" 하고 읽으니까요.


보는 사람이 기분 나쁘니 '쓰지 말라'는 요지가 아닙니다. 굳이 꼭 쓰는 자기의 모습이 무례하고 격 없음을 알아 주었으면 해서 하는 말입니다. 원하는 수를 쓸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로 해석 가능한 행동, 즉 명확한 의도를 품고 있지만 한편으로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며 빠져 나갈 구멍이 있는 행동을 한 뒤, 한 쪽을 문제 삼는 사람에게 다른 쪽을 들이대며 방어하는 것은 자유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본인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비판을 받으면서도 69와 420이 그렇게 재미 있다면 계속 쓰십시오. 저는 재미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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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ejseo2021.07.11 19:06 신고

    동감합니다. 그리고 그에 무의식적으로 가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글이네요.